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생활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는 도덕적·윤리적 요청임과 동시에 법적 요구이기도 하다. 법상  ‘주의의무(注意義務)’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일정한 주의를 해야 할 의무를 말하는데, 이는 신의칙(信義則)의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주의의무는 그 기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자기를 위하는 것과 동일한 주의의무’로 나뉘는데, 후자의 주관적 주의의무는 전자의 객관적 선관주의의무에 비해 약한 주의의무로 취급된다.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란 그 사람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래상 보통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지칭하는데, 이러한 일반적·객관적 기준에 의해 요구되는 주의를 결하는 것을 ‘추상적 과실’이라 하며, 이것이 민법상 주의의무의 원칙이다. 민법은 "수임인은 위임의 본지(本旨)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제681조)해 위임계약상 수임인(受任人)에게 선관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통상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보통의 합리적인 사람의 기준에서 판단하며, 의사 등 전문직종의 경우 보통사람 기준이 아니라 그 직종의 평균적인 기준의 주의의무를 요한다. 

우리 대법원은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해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그 당시 의료수준에 비춰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판 1994. 4. 26. 93다59304). 노동법 분야에서는 특히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그의 생명·신체 및 건강 등 안전을 확보하고 근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는 ‘안전배려의무(安全配慮義務)’를 강조하는데, 이 안전배려의무도 주의의무의 한 태양(態樣)에 해당한다. 

아무튼 어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가 마땅히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면 ‘과실(過失)’이 인정돼 그에 상응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데, 주의의무를 ‘현저히’ 소홀히 한 경우에는 ‘중과실(重過失)’로 인정돼 일반적인 주의의무 위반의 경우(경과실)보다 더 무거운 법적 책임을 지게 되기도 한다. 법적 책임에는 민사상의 책임(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외에 형사상의 책임(과실치사상죄 등)이 포함된다. 아무튼 사람은 죽을 때까지 조심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교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군의 지휘관은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다단한 세상이 됐기에 주의의무 종류와 내용도 매우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사고를 피할 수 없다. 사고 발생 여부는 순전히 운수 소관이다"라고 푸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면 사고 발생 개연성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과실책임주의(過失責任主義)’라는 법원칙에 의해 보호받을 수도 있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무과실’로 인정돼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의의무를 다한다는 것’ 즉 ‘충분히 조심하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전에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라는 말이 통용될 때에는 언론에서 장·차관 등 고위직에 대한 인사평으로 ‘두주불사형(斗酒不辭型)’이란 칭찬조의 치사를 자주 했지만, 요즘엔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란 말도 잘 쓰이지 않는다. 주(酒)와 색(色)을 가까이 하면서 주의의무를 제대로 기울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들 용어는 오히려 자못 삼가야 할 말이 됐다. 누구든 이름 석자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자신의 관 뚜껑이 닫힐 때까지 끊임없이 스스로 경계하며 주의의무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나 때에는 이러저러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세상살이를 ‘무사고’로 안전하게 마무리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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