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희 군포시장
한대희 군포시장

귀농, 귀촌 바람이 불고 있다. 퇴직 후 인생 2막 개척의 의미도 있지만,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인간의 귀소(歸巢) 본능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농촌 출신인 필자도 시정에 채여 정신없이 지내다가, 문득 어렸을 적 시골 생활에 대한 기억이 아스라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펼쳐지는 중국인들의 삶을 묘사한 미국 소설가 펄 S. 벅의 「대지」에서 주인공인 농부 왕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고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땅과 여기에서 빚어지는 삶에 대한 향수는 인간에게 내재적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도시화도 매우 신속히 진행됐다. 농촌 인구가 대규모로 도시로 유입되면서 도시의 경계가 계속 확장되는가 하면, 하루가 다르게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났다. 

"사방을 몇 바퀴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 숲…"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상당수 한국인들은 언제부턴가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지내고 있다. 

1기 신도시를 안고 있는  군포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화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교통, 주택, 공해, 도시빈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인간의 심성을 메마르게 만든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주말 텃밭농장, 농부학교처럼 도시화 질병(?)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등장했다. 

군포시도 지난 4월부터 ‘군포시민 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개강식에 참석하고 프로그램도 살펴봤다. 속달동에 있는 실습체험장도 둘러봤다. 농업 전반에 대한 지식, 작물재배 기술, 토양관리 등을 익히고, 모종심기 등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 

굳이 귀농 대비가 아니어도 괜찮다. 농촌생활에 대한 배움과 실천을 통해 수확의 기쁨과 노동의 참뜻, 생명의 소중함을 익히면 그것으로 좋지 않겠는가. 주말이면 자녀들과 함께 실습체험장에 가서 잡초제거와 물주기 등 텃밭관리를 한다고 한다. 

농촌생활을 주제로 자연스레 대화도 오간다. 자녀들도 스마트폰 삼매경에서 벗어나, 땅을 벗삼아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새싹을 보면 색다른 감정이 솟아오르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농촌생활은 심신(心身)이 피곤하고 고달프다. 

하지만 삶을 새록새록 다져주기도 한다. 땅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는 알곡을 보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땅과 자연은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배우고 느낄 점이 많다는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작곡가가 직접 제목을 다는 이른바 표제음악이다. 베토벤은 ‘전원’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부제(副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시골생활을 누릴 때 인간의 내면에 솟아나는 즐거움이 표현됨’이 부제다. 

당시 베토벤은 청력이 나빠졌다고 한다. 청력 회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 인근의 작은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에 가서 요양하고 있을 때였는데,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선율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은 전원생활을 유난히 즐겼다고 한다. 전원생활의 기쁨,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베토벤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주말에 도시를 벗어나 농촌에 가보자. 텃밭을 운영해도 좋겠지만, 전원의 생기를 느끼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거다. 도시 콘크리트 속에서의 전원생활, 어딘가 맞지 않는 듯하지만, 도시화 질병을 치유하고 자연 속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베토벤의 전원을 들으면 그날 하루는 잘 보낸 것이 아닐까. 18세기 독일 질풍노도운동의 대표적 인물 괴테는 ‘5월의 노래’에서 자연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자연이 찬란하게 내게 빛을 보내요. 오! 대지여, 태양이여, 기쁨이여, 환희여!" 틈틈이 흙냄새를 맡아보자. 땅에 입맞춤도 해보자. 사람과 대지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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