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관포지교라는 고사 속에서 빛나는 역사의 미담이 되었다.

이에 반하여 삼국시대 화흠과 관영의 할석분좌 고사는 우정을 접은 대표적 이야기로 회자된다. 젊은 시절 화흠과 관영은 절친으로 함께 농사짓고 함께 공부하며 우애를 나누었다.

그런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독서하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고관의 행차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사람들의 함성소리도 들려왔다. 이때 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독서에 열중했는데 화흠은 달랐다.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고관의 행차를 신나게 구경했다. 행차가 지나가고 화흠이 안으로 들어오자 관영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가버렸고 이후 어떤 자리에서도 함께 있지 않았다. 친구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관영은 훗날 요동으로 피신한 뒤에 늘 흰 관을 쓰고 누각에서 내려오지 않음으로써 ‘위나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화흠은 손권을 섬기다가 조조에게 가서 마침내 복황후 머리채를 끌고 나와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으나 고관대작으로 승진하여 호의호식하며 지냈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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