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호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신은호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서울에 청계천이 있다면 인천에는 굴포천이 있습니다. 아~ 오늘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6월 11일 굴포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착공식은 내게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 그 이상이었다. 43년 전, 일자리를 찾아 인천에 상경했고, 터 잡은 곳이 바로 굴포천 인근의 작은 단칸방이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장마철이 되자 온 집안이 물에 잠겨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굴포천에서의 삶을 떠올린다. 굴포천 인근 주민들이 살아왔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장마철이 되면 집안 가득 차오른 물을 퍼내느라 하루를 다 쏟아 부은 적도 허다했으니 말이다. 그랬던 굴포천이 현재 자연과 이야기하며 걷고 싶은 하천으로 재탄생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굴포천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굴포천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탄한 길만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굴포천 입장에서 바라볼 때 그야말로 거듭된 고난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거세게 불어온 산업화 바람은 인천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동전의 양면처럼 경제성장과 동시에 환경 피해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로 오염된 굴포천에 독극물 성분이 검출되고 심한 악취를 풍기며 하천의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더해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천 가족공원 입구부터 부평구청 앞까지 주차장과 도로로 이용하기 위해 복개되며 옛 굴포천 모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과거 한 장면으로 잊혀져 갔다. 그러다 2000년부터 굴포천 살리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2001년 6월 6일 환경의날을 맞아 시민사회뿐 아니라 종교계, 일반주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굴포천살리기운동시민모임’ 창립총회가 열렸다. 

그 뒤 본격적으로 굴포천을 생태하천으로 바꾸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시민모임은 매달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폐타이어, 플라스틱류 등으로 뒤덮인 굴포천 일대를 청소하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고 지역사회 전역에 굴포천 살리기 바람을 일으켰다. 나 또한 하천네크워크 회원으로 매달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굴포천 생태하천 복원의 간절한 꿈을 키워 나갔다. 결국 시민들의 간절함은 굴포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시작된 굴포천 생태하천 정비공사는 2006년부터 시작해 부평구청부터 부천시 경계까지 굴포천 구간의 바닥을 준설했고 부평구청 앞에 오수 차집시설을 설치해 복개구간 오수를 차집하게 하며 서울 풍납 취수장으로부터 한강 물을 끌어와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2008년 10월 정비공사를 완료했다. 그러자 그 이듬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겨울과 봄에는 청둥오리가 날아왔고 잉어 떼가 출현하게 됐다. 또한 12월이 되면 백로와 흑두루미, 흰뺨 검둥오리 떼도 찾아왔다. 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물길은 점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제 굴포천은 복개됐던 중상류 구간 복원사업을 통해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인천 최초의 물길이음사업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그동안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생태하천의 물꼬를 텄다면, 앞으로는 행정과 정치의 시간이다. 박남춘 시장은 착공식 현장에서 인천 최초의 물길이음 사업이라 언급하며 도시환경과 하천수질 개선은 물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굴포천 생태하천 청사진을 그렸다. 

인천은 이처럼 시민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냈고, 그 기적은 현실이 돼 지금 시민들 곁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를 품고 있는 굴포천의 새로운 미래가 인천을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굴포천의 하루는 분주하다. 그 중심에 인천이 있고, 위대한 인천시민이 있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인천에는 굴포천이 있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