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조너선 스위프트의 유명한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발니바르비’라는 나라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국가 운영방식을 일체 부정하고, 새로운 기반 위에 나라를 세우려 했다. 도시 곳곳에 학사원을 설립해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획기적인 시도와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들이 손댄 어느 것 하나 성공적으로 완성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비참하리만치 황폐해졌으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다. 

이런 ‘환상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이 불편한 사실이다. 흔히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책은 대부분 폐기된다. 그 자리엔 낯선 이름의 정책이 등장하지만, 그 결과도 거의 실패로 귀결된다. 지난 5월 산림청이 무모하게 숲을 밀어버린 산림정책도 그러할 것이다. 지난 5월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탄소 중립을 위해 향후 30년간 3억 그루를 베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30년 이상 늙은 나무들의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영국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30명의 과학자가 쓴 ‘나무 크기에 따라 탄소흡수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라는 제목의 논문 내용은 산림청 주장과 상반된다. 

극단적인 경우, 오래된 큰 나무 한 그루가 축적한 탄소 양은 숲 전체의 중간 크기 나무의 탄소량과 같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도 2018년 산림청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수목원에서 나왔다. 왜 이런 무모한 조치는 감행됐을까? 이는 숲을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해 산림을 온실가스 저감수단으로 관리하도록 명시한 교토의정서 규정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2018년, ‘2030년까지 온실가스감축 목표 37% 중’ 기존 수단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3억8천300만 t을 산림 흡수원을 통해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여기에서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실제로 지구기후 온난화와 기후변화 원인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우리는 많은 기후학자의 반론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의 현상과 같이 기후도 변하는 것이 사실이다. 남극 빙핵에서 나온 80만 년 동안 중수소 데이터 온도 추정치를 조사한 고(古)기후학자들은 지구에서 빙하기와 온난기가 주기적으로 이어 왔다고 한다. 이 주기는 지구 축의 기울기와 궤도 모양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間氷期)는 1만 년에서 1만5천 년 지속하는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간빙기는 1만1천 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4천 년 후면 지구는 오히려 빙하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 주범이 아니며, 기후 온난화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기 전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이산화탄소연맹 회장이며 기후변화부문의 전문가 그레고리 라이트스톤의 저서 「불편한 사실」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 60개 항목의 불편한 사실을 통해 종말론적인 기후변화 주장이 허구임을 밝힌다. 

지난 22일자 어느 중앙지의 ‘지구재앙 막을 시간 30년 남았다’라는 제목의 보도는 마치 지구가 곧 끝나기라도 하는 듯한 지나친 경고로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설은, 이산화탄소의 농도증가는 단위농도에 따른 온실효과가 감소시킬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증가로 폭염·가뭄 감소, 식량 생산 증가를 가져왔고, 북극곰 개체 수는 오히려 증가했고, 해수면은 북극 만년설이 녹아도 높아지지 않으며, 남극대륙 대부분은 냉각화돼 얼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온난화 관련, 기억해야 할 것은 약 12만 년 전 마지막 간빙기는 지금보다 8℃가 더 높았다는 것이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모델은 온난화를 최대 3배까지 지나치게 과대 예측했다는 불편한 사실 등이다. ‘불편한 사실’의 저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정책이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어떤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 결론을 맺었다. 이 같은 불편한 ‘진실’과 ‘사실’을 보며, ‘진실은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라고 한 어느 철학자 말이 생각났다. 이는 과연 어느 편을 가리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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