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내 삶은 어릴 때부터 평범치 않았다. 본디 가난했던 데다 형제자매들은 많은데 아버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사고로 다리를 하나 잃어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 사시다 보니 일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님 또한 끙끙 앓는 몸을 이끈 채 힘겹게 일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와 형제들은 사는 걸 각자 해결해야 했다. 생계가 어려우니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리어카를 끌고 가 논밭일을 하고, 점방에서 차표와 물건을 팔면서 각종 심부름을 했다. 

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도장을 파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30여 가구에 신문도 돌렸다.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 허름한 러닝셔츠만 입다가 ‘○○신문’이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앞뒤로 프린트된 러닝셔츠를 받았는데 큰 글씨가 부담스럽기는커녕 새 옷이란 이유만으로 너무 좋아서 열심히도 입고 다녔다. 춘궁기엔 논과 밭을 찾아다니며 싹이 나오기 전 양분을 품고 있는 풀뿌리를 뽑아서 빨곤 했다. 사탕의 단맛에 비할 순 없지만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버겁던 그 시절엔 비릿한 단맛이 꽤나 달콤했다. 

생계가 막막한데 학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학비 부담을 덜고자 장학금을 받기 위해 지방대를 택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집안일을 도와야 해서 휴학하기 일쑤였다. 끝없는 농사일을 하고도 학비를 벌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이들 소풍 시즌에는 리어카에 대문으로 썼던 널빤지를 올려 과자와 음료수를 가득 싣고 따라갔다. 운동회가 열리면 아예 학교 앞에 가판을 펼쳤다. 때론 해수욕장에 탁구장을 설치해 운영하고 음료수도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억척스러웠다. 

당시엔 가난으로 얼룩져 긍정도 행복도 찾아볼 수 없는 날들이었다. 꿈을 찾아야 할 시기에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가난이란 산을 넘고자 큰맘 먹고 도전했지만 좌절했던 일들도 있다. 국비 유학생 제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주경야독하며 유학 공부에 몰두했었다. 나처럼 시골 출신이 의지만으로 덤빌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두 번째는 가요제 도전이었다. 기타를 붙잡고 노래에만 매달렸지만 결과는 탈락. 수상만 물 건너간 게 아니라 격한 연습으로 인해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결국 수술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방황하면서 서점을 들락거리다 고시 합격생들이 쓴 수기 모음집을 접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란 책이다. 책 제목부터가 참 건방졌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이 집안, 이 환경 등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대부분 얘기하는데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모두가 나보다 더한 처지에서 공부해 합격한 사연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정말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앉아 있다 보니 속에 탈이 나고 허리까지 망가졌다. 그렇게 3년을 꽉 채우고서야 ‘합격’이란 인생 최초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걸 꼽는다면 살림살이가 아닐까 싶다.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지독한 가난에 얽매여 있다면 몇십 배 몇백 배는 노력해야 비로소 그 산을 넘을 수 있다. 못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단 가정의 가난만이 아니다. 지역의 가난도 국가의 가난도 모두 포함된다. 빈곤 국가에는 여전히 변변한 학교 하나 없고, 하루를 꼬박 걸어야만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가난만큼은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개인은 물론이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함께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치열하게 도전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오히려 순탄치 않았기에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열정과 끈기로 나를 담금질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다. 특히 일자리 부분에 있어 청년들의 어려움이 크다.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 사정은 다르지만 그동안 늘 어려움은 있어왔다. 이럴 때일수록 치열하게 도전해야 한다. 이겨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기본적인 가난만큼은 해결하자. 그래야 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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