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준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수석부회장
장영준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수석부회장

옛 문헌에 치과 관련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구두쇠가 이 하나를 빼기 위해서 2냥에 빼기로 하고 치과업자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막상 치과업자가 오니 2냥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1냥에 빼달라고 흥정하다가 3냥에 2개를 뺐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싸다고 하더라도, 안 빼야 할 치아를 빼는 것은, 몸도 버리고 돈도 버리는 일이 됩니다. 즉, 가격이 저렴하다고 불필요한 치과 치료를 더 받는 것은 오히려 몸에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치과에서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 비용을 아주 싼값으로 환자들을 유인하는 치과를 덤핑치과라고 합니다. 반값이라고 해서 덤핑치과를 갔는데, 실제로 반값에 하고 나왔다는 환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더 하라고 해서 보통 치과만큼, 혹은 더 많은 치료비를 내고 치료를 받고 나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일반 치과에 간 것과 비슷한 치료비를 냈고, 치료를 두 배를 받았으니, 두 배로 좋은 것일까요?

고려시대 이야기에서 보듯, 하지 말아야 할 치료를 받은 만큼 내 몸이 더 망가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만 손해를 봤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돈도 주고 몸도 망가지게 돼 더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치과 진료를 받는데 치료비는 중요한 고려 요인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가리고 가격만 비교하게 되면, 결국에는 우리 몸이 더 망가지게 됩니다. 꼭 필요한 치료만 제대로 하고 제값 받는 치과는 비싼 치과로 외면 받고, 싸다는 것을 광고해 과잉 진료를 하는 덤핑치과가 판을 치게 돼 결국 국민 구강건강에 많은 해가 생깁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42조의3(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현황조사 등) 개정 추진에 따라 2021년부터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의무화 시행을 의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 예정으로 ‘의원급’ 의료기관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의원에서 하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해서 비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보기 좋은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순히 ‘가격’만을 공개함으로써 의료 및 진료 질을 높이는 데에는 무관심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질 떨어지는 치료와 과잉 진료를 양산해 결국 국민들의 구강건강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치과의료정책연구원에서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정책이 진료비용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선행연구’를 진행했었는데, 가격정보 정책이 입법 전후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으나 지속적으로는 큰 효과가 없고 도리어 환자가 단순히 가격만으로 의료 서비스를 선택해 그 피해를 환자가 고스란히 입을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결론 냈습니다.

적정 진료비에는 사후 AS에 대한 비용까지도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에 저렴한 가격을 홍보해 과잉진료로 돈을 번 다음, 치과 문을 닫고 사라지는 이른바 ‘먹튀’ 치과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정책은 이런 먹튀 치과를 양산하고, 환자들은 AS를 받지 못해 나중에 더 큰 진료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기에 앞서 과도한 덤핑 마케팅을 통해 환자를 유혹하며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의료기관들에 대한 대처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치협, 의협, 한의협, 병협 등 4개 단체가 한목소리로 반대를 하고 있고, 전국 1만 명이 넘는 치과의사들이 짧은 시간에 서명에 참여하는 등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정책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의사들의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의사의 양심에 따른 진료 자율권을 지키는 것이고, 의료 상업화를 막고, 국민 구강건강을 지키는 목소리입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정책을 즉각 철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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