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동인천역의 역사는 1899년 9월 경인철도 개통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 역명은 축현역이었다. 이후 상인천역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후 축현역을 거쳐 1955년 동인천역이 됐다. 경인선 이용 승객은 주로 동인천역을 이용했고, 인천역은 승객보다는 인천항을 오가는 화물 중심역으로 작동했다. 

 동인천역이 인천을 상징하는 대표 역이라는 위상과 달리 역 건물은 자료 부족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개통 당시 모습은 물론 그 이후에 세워진 건물도 그렇다. 

 역의 위치도 지금과 달랐다. 동인천역 공영주차장 일대가 그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부설된 최초의 선로는 곡선이었다. 이후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그 위에 철로를 부설해 직선으로 바뀌었고, 이때 역 위치도 바뀌었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동인천역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역사는 방치된 채 몇 년이 흘렀는지 헤아리기 힘들고, 전철 이용객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통로를 따라 오간다. 

 역사 전면 쇼핑센터 진입 계단은 관리 부실로 석재가 무너지고 잡초가 자라 흡사 폐허로 변한 유적지 같다. 동인천역 광장은 취객과 노숙인이 뒤엉켜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악취가 진동한다. 어쩌다 전철을 이용하려면 코를 막아야 하고 볼썽사나운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동인천역사가 이렇게 된 데에는 원도심 쇠락이 가장 큰 문제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철도공사의 민자역사 사업 실패에 기인한다. 신용석 선생은 2013년 ‘괴물 같은 동인천역’이라는 제하에 "인천광역시의 행정에 시민들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려는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뒤를 이어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행정 당국을 질타하는 여론이 일어도 요지부동이다.

 동인천 민자역사는 1987년 서울역, 영등포역과 함께 민간 사업자에게 점용이 허가돼 지상 6층, 지하 3층 규모의 인천백화점이 들어섰다. 2001년 한때 성황을 누리던 백화점이 문을 닫고 이어 문을 연 쇼핑센터도 2008년 영업을 중단한 뒤 지금까지 방치 상태이다. 

 한때 ‘점용기간이 끝나는 2017년 말에 국가로 귀속한다’는 현수막이 걸렸을 때 이제는 동인천역이 정상화되나 보다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현수막은 어느 날 슬그머니 사라졌고 역사와 주변 환경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역대 시장마다 동인천역 주변지역을 대상으로 거대한 계획을 수립했다고 자랑했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2019년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선정되고 작년 말 도시재생특별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최종 승인한 ‘동인천역 2030역전 프로젝트’에도 동인천역사를 살릴 계획은 없다. 언제까지 동인천역사를 이대로 놔둘 것인지 안타깝다.

 시민은 민자역사 사업자와 철도공사 사이에 벌어진 길고 지루한 법적 다툼이 끝나고도 방치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천시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놓고 철도공사 소관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당국의 변명은 곧이들리지 않는다. 근 10년 사이 한 번이라도 동인천역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거의 비슷한 심정일 게다. 

 철도공사와 인천시는 원도심 거주민이 인천 발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동인천역 정상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일상의 문제가 돼 버린 동인천역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저층 주거지를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고, 관광안내 지도를 만들어 원도심을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이 아니다. 진정한 도시재생은 거주자가 생활문화를 온전히 지속할 수 있도록 도시 환경을 정비하는 일이다.

 동인천역은 쇠락한 원도심의 상징이다. 인천 원도심 재생은 동인천역과 주변 환경 정상화에서 시작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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