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사)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강석승 (사)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한 달여만의 공백(보다 정확히는,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끝에 지난 4일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 중앙위 간부, 성·중앙기관의 당 및 행정책임 간부, 도당 책임비서 등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열린 당 중앙위 확대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국가 비상 방역전 장기화 요구에 따라 조직기구적 물질적 및 과학기술적 대책을 세우는데 대한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함으로써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고 역설하는 가운데 "중대과업의 관철에 제동을 걸고 방해를 노는 중요한 인자(因子)는 바로 간부들의 무능과 무책임성, 그리고 이에 따른 기강해이와 직무태만"이라 단정하면서 "지금이야말로 경제 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인민 생활 안정과 경제건설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과오’를 언급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사안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문제는, 왜 하필이면 지금, 이렇듯 많은 실세(實勢)들을 불러 모았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김 위원장이 회의 개최 이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완되거나 약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닥친 태풍과 해일 등 자연재해로 인해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여기에 더해 북한의 대미 접촉 역시 아무런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및 러시아로부터의 지원과 원조도 기대 이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입장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대내외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가운데 자력 갱생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 가시적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김 위원장으로서는 무한정 세월 가기만 기다릴 처지도 아니고, 무언가 일말의 쇄신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확대 회의인데,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선대 수령들이 했던 것처럼 실정(失政), 즉 인민들의 실생활 악화나 대외정책 등 부진을 책임질 ‘희생양(Scape Goat)’을 물색했을 것이다. 마치 김일성 시대 남로당 총책 박헌영을 남조선 스파이로, 김정일 시대 농업상 서관희를 역시 희생양으로 삼은 것처럼….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지난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당 재정부장을 처형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고모부인 당 행정부장 장성택, 그리고 2015년에는 군부 핵심간부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을 처형하는 등 ‘반당, 반혁명을’을 구실로 한 숙청은 날이 갈수록 그 도(度)를 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구태여 코로나19와 경제건설과 연관시킨다면,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사항이 공표되고 있지는 않지만,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내각총리 김덕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군 및 과학교육부가 보건부문에도 관여한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군 총참모장인 박정천이나 당 중앙위원회 비서겸 교육과학부장 최상건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선지적 혜안을 갖고 있지 않은 전문가라 할 지라도 최근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핵심세력 숙청은 마치 고사(故事)에 나오는 토사구팽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아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다. ‘김정은 식’ 피의 숙청이 이미 시작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보여지는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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