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돈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한재돈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심청전’에 보면 심청이가 봉사인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 깊은 물속에 빠져 죽는 장면이 나온다. 나를 깨친 도인들은 바로 심청이와 똑같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심정으로 봉사로  살고있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의 법을 설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멀쩡하게 눈을 뜨고 세상을 잘 살고 있는데  눈 감은 봉사가 웬 말이냐고. 그러나 사실이다. 눈 뜬 도인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봉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참나는 보지 못하고 가짜 나인 색신(色身)을 나로 여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 보이는 현상물들이 참인 것으로 보고 살기에 돈에 속고 사랑에 속고 명예에 속고 말에 속고 세상일에 속고 몸뚱이인 색신이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것에 속으면서 괴롭고 고통 속에 살고 세상을 헤매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봉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자기가 만든 환(幻)과 같고 꿈속과 같은 환영(幻影)의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만든 그 세상 구렁텅이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에 봉사라 부르는 것이다. 그 결과로 가짜 나가 생기고 가짜 상대방이 생기면서 서로가 경쟁하면서 시비하고 속이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온갖 죄악을 범하면서 살고 있으니 눈먼 장님이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의 진면목(眞面目)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육신인 몸뚱이를 나로 여기고 살기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육신인 몸뚱이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변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이 몸뚱이다.

이제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몸뚱이가 아닌 불멸의 마음을 나로 여기고 살아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얻고 영원한 삶을 누려야 할 때이다. 심청이가 마음을 깨치고 큰 도인이 되고 봉사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이 명장면이다.

나를 바로 봐야 한다. 그리고 눈을 뜨고 봉사가 아닌 정상인으로 태어나 세상을 바로 보고 속지 않고 대장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심청전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심청이가 마련한 잔치 마당에 세상의 모든 장님들이 모여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똑같이 눈을 뜨는 장면이다. 여기서도 번쩍 저기서도 번쩍 사방팔방에서 눈이 번쩍 번쩍 모두가 눈을 떠서 기뻐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감동스럽다. 우리네 사람들도 모두가 이와 같이 눈들이 번쩍 번쩍 뜨여 정상인이 되길 기대한다. 눈을 뜨고 정상인으로 사는 방법은 오직 자기자신의 진면목(眞面目)을 깨치는 방법밖에 없다. 그 길은 오직 참선 수행뿐이다. 묻는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화두(話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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