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문화재청이 경복궁 복원에 몰두하고 있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건물 대부분을 허물어 석조건물과 가건물, 그리고 프랑스 정원을 멋대로 만든 일제의 흔적을 지워나가자 곳곳에서 참혹한 상흔이 드러난다. 조선총독부는 통치 5년 만에 근대화 성과를 과시하려고 하필 경복궁 한가운데에 박람회를 개최해 민족의 역사를 파괴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문화재청은 100년이 훌쩍 지났어도 경복궁을 되살리려 한다. 무슨 이유일까?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해석했다. 일제의 천박한 흔적을 제대로 지우지 못한 500년 조선의 대표적 궁궐, 경복궁은 복원 후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이야기할까? 조선총독부가 천박하게 파괴한 경복궁은 일제강점기에 어떤 이야기를 전파하고 싶었을까? 정체불명 건축물이 여전히 남았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 허우적거렸을까? 어떤 목적으로 누군가가 지웠던 역사를 비용과 시간을 감내하면서 굳이 복원하는 이유는 정체성 회복이다.

아팠든 기뻤든, 역사가 뿌리내린 장소의 현재와 내일을 위한 과업이리라.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놀라는 일이 많은 모양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기 때문일까?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높고 화려한 빌딩과 치맥의 달콤함만은 아닐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넘어 7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차지한 BTS의 ‘버터’가 물론 자랑스럽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은 박물관에서 반만년 이어온 역사와 문화의 참모습을 본다. 독재의 사슬을 스스로 벗은 민주주의의 상징, 광화문의 백만 촛불에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인천은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다. 일제에 이은 군사정권의 가혹한 산업화는 인천 노동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노동자를 끌어안고 치유한 사람과 장소가 역사를 만들었기에 오늘의 인천이 있다. 동구 화평동의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 일꾼교회)가 대표적인 장소다. 

서슬 퍼런 시절, 유신정권의 탄압에 희생된 피해자를 안아준 교회는 분뇨를 뒤집어쓰며 눈물로 저항하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에게 따뜻한 피난처가 됐다. 그 역사를 오롯하게 기억하기에 인천은 같은 상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탄압을 일삼은 군사정권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어도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주인공을 최근까지 배출했는데, 굴지의 건축 자본과 역사의식을 상실한 위원회 인사들의 헛발질로 위기에 내몰렸다. 

40층 넘나드는 3천여 가구 아파트단지에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허물어질지 모른다. 일제와 군사독재가 물러난 이후에 인천의 역사는 돈을 위해 파괴돼야 하겠는가? 아파트 입주민이 늘어나면 지역이 흥한다던가? 지역의 역사를 백안시하는 자본과 지방행정은 어떤 흑역사를 후손에게 남기려 드는 걸까?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외지인은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 

낮은 임대료에 이끌려 주민등록을 옮긴 이는 직장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도로와 지하철을 원한다. 개발로 지역의 생태와 문화가 파괴되는 걸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기뻤든 아팠든, 역사는 역사다. 국가든 지역이든, 정체성을 간직하는 역사를 보전하고 복원하려 애를 쓰는데, 민주주의의 횃불이던 역사의 장소를 기필코 파괴하려는 자 누구이고, 그 의도는 무엇인가?

인천의 78개 시민사회단체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로 모여야 했다. 지난 13일 ’인천애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를 제자리에서 보존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활동하겠다고 천명했고, 그날 이후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이 릴레이 동조 단식에 나선 모양이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4대 총무를 맡았던 김정택 목사는 70대 나이에도 무더위 속에 25일이 넘는 단식을 멈추지 않고, 60대 중반인 미문의 일꾼교회 김도진 목사도 역사를 지키려 안간힘을 보탠다. 인천시민 대표는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애를 쓸 텐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역사의 어떤 증인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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