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선뜻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도 선뜻 용서할 수 있는 관대함이 있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임을 아니까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요즘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자신의 실수를 지혜롭게 시인함으로써 용서를 받은 것은 물론 오히려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성공한 리더는 유머로 말한다 (민현기 저)」에 따르면, 1980년 뉴햄프셔 예비선거 연설 중에 누군가가 고의로 마이크를 껐을 때 화를 내는 대신에 "나는 마이크 사용료를 이미 냈는데요"라며 웃어 넘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7년 3월, 75살이 된 그는 이란 인질 협상이 무기 뒷거래와 관련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도 이렇게 멋진 유머를 구사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여러분도 내 나이쯤 되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면서 그 실수를 자신의 나이와 연결해 웃음을 짓게 하는 여유가 참으로 부럽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면 사람들은 미소 짓게 되고, 그를 더욱더 존경하게 됩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히 ‘용서’의 미덕이 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지혜의 보석상자 (심창희 저)」에 노벨상 수상자인 호주 동물학자 로렌츠 박사의 연구 결과가 소개돼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동물은 싸울 때 각각 독특한 모습으로 항복 의사를 내보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원숭이가 엉덩이를 들고 땅에 바짝 엎드리면 상대는 공격을 멈추고, 개가 꼬리를 내리고 목을 보이면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는 점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동물은 상대가 항복 자세를 취하면 공격을 멈춥니다. 이것이 동물 세계에서 지켜지는 질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요?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설령 시인한다고 해도 계속 공격을 가해 다시는 그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놓곤 합니다. 어쩌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동물보다도 훨씬 못한 존재는 아닐까요? 「지혜 (스샤오엔 저)」에서 저자는 용서를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고 규정 지으면서 깨끗한 수도자의 삶을 살아온 일본의 백은 선사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백은 선사가 사는 마을에서 어느 부부의 딸이 배가 불러왔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추궁했더니 딸은 아이 아버지가 백은 선사라고 둘러댔습니다. 아버지는 선사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런데 선사는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라며 즉각 시인하는 듯한 대답을 했습니다. 

딸이 아이를 낳자 딸의 부모는 아이를 선사에게 보냈습니다. 선사는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마을을 다니며 젖동냥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도 동냥했습니다. 그가 동냥하러 마을에 가기만 하면 온갖 무시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럴 때도 선사는 담담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딸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버지에게 아이 아빠는 어시장에서 일하는 청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딸의 아버지는 선사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도 선사는 무덤덤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라고 받아들이고, 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모습에서는 마치 신의 경지까지 오른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문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다음에 마을 사람들은 선사를 더욱더 존경하게 됐을 겁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즉각 시인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남의 실수를 용서하는 것 모두 ‘용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그 용기에 대해 사람들은 존경심으로 화답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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