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主筆)

우리는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천명(闡明)하고 있다. 이어 동법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대통령에게 지우고 있다(제66조).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를 한다(동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선서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의 법 체계상 최상위법이다. 누구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주자(走者)들 간 선거운동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는 입법·행정·사법부로 권한을 나눠 국가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 하나,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는 대선 주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라의 헌법을 인정치 않는 후보가 내년 대선(大選)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취임선서문 문구를 낭독하지 않을 것인가.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사법체계를 붕괴시키고 헌법마저 부정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하겠다. 

나는 대선이 치러진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그때마다 "여보게 친구! 대통령 출마 안 하나?"라는 동(同) 제하(題下)에 칼럼을 게재하곤 했다. 그때도 그랬다. 나 아니면 안 됐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었다. 세월은 꽤 여러 해가 흘렀지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보이질 않는다. 정치 토양이 바뀌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정품(正品) 한 점 키워낼 수 없는 우리의 풍토가 아쉬울 뿐이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권자로서 나라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한 주자들 중에 한 나라를 이끌어 갈 만한 깜냥이 보이질 않는다. 하나같이 ‘나요! 나!’를 외치고 있으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 눈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일 게다. 옳고 그름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주자들 간 투쟁 양상이 점입가관(漸入可觀)이다. 선거에서 득이 된다 싶으면 어떠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線), ‘스워드 라인(sword line)’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서는 먼 나라 얘기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일까. 너는 꿩, 나는 꿩 잡는 매니 하고 산에 사는 날짐승까지 불러 들이고 있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까지도 소환하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더러운 손’, ‘정신질환’이라는 극한 용어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어제 오늘의 모습이 아니지만 우리 선거판에서 페어 플레이(fair play)정신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오늘도 상대 후보들을 헐뜯고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는 주자들이다. 상대 정당 간 후보 폄훼(貶毁)는 그렇다고 치자. 자당 후보 선발전마저 진흙탕 싸움이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적자(嫡子) 정통론’을 들고 나온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자리는 세습으로 이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여전히 대통령 직을 세습제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주자들은 표와 직결된다면 헛공약도 개의치 않는다. 역대 대선 후보들이 그래 왔듯이 지키고 안 지키고는 나중 문제다. 실현가능성 여부조차 계산하지 않은 듯한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주자들이다. 수신제가 (修身齊家) 연후에 치국(治國)하라 했다. 품위 없음은 뒤로 하고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품격, 즉 인격(人格)을 지닌 모습을 대권 주자들에게서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나라의 품격,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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