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74분 /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폐경까지 겪은 나이 든 여성이 당한 성폭행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촘촘하게 들여다본 영화가 관객들을 찾는다. 이 영화는 일평생 수산시장에서 일한 오복(정애화 분)이 술자리에서 성폭행 당한 이후 수치스럽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견디며 세상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그린다.
 

 김미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았다. 또 함부르크영화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됐다. 영화는 결혼을 앞둔 딸의 엄마이자 남편에게 차마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내, 생계가 달린 일로 얽혀 있는 가해자의 동료라는 오복의 신분을 통해 중년 여성이 당한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가슴이 답답하리 만큼 복잡한 상황 안에 던진다.

 가해자에게 사과조차 떳떳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오복의 상황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현실적이어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김 감독은 "다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사건들을 많이 참고했다"며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건을 타임라인대로 되짚으면서 많이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성폭행 사건 외에도 영화에는 결혼을 앞두고 예단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신부나 보상금 문제 앞에 진실을 외면하는 상인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1인 시위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눈 딱 한 번 감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며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침묵도 꼬집는다. 오복은 분하고 억울하면서도 혹여 딸의 결혼에 피해가 갈까, 구청과 상인들의 보상금 합의를 이끄는 가해자를 지목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큰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느냐며 적반하장인 가해자와 그를 두둔하는 동료 상인들, 왜 술을 마셨느냐는 원망 섞인 딸의 말 한마디가 뒤따른다.

 하지만 오복은 결코 침묵당하지 않고 목소리를 낸다. "이 사람, 저 사람 죄다 눈치 보면 나는 언제 챙겨?"라는 오복의 대사는 희생을 강요당하던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려는 여성이자 한 사람으로서 투쟁을 대변한다. 여기에 엄마를 돕기 위해 나서는 두 딸의 연대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또 영화는 성폭행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당시 상황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암시도 주지 않는다. 이는 김 감독이 연출에 있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기도 하다. 28일 개봉.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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