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희 군포시장
한대희 군포시장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인지(認知)할 수 있는 유일한 종(種)일 것이다. 인지력과 사고력으로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고 대화를 한다. 공동체 생활도 가능해진다. 현생인류의 조상 격인 호모사피엔스의 무기가 바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생태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인지혁명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인 셈이다. 

사고력을 키우는 데는 책 읽기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이야 누구든 책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서양 중세 때만 해도 책 읽는 사람은 제한돼 있었다. 귀족과 사제 등 일부 계층의 특권이었다. 하층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 후 인쇄술의 발달로 책 보급이 광범위해지면서 독서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는 근대의 출발점이다. 

여백(餘白)의 미(美)라는 말이 있다. 주로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구구절절 읊조리지 않고 텅 빈 여백을 제공함으로써 보는 사람들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 둔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백의 미를 독서에도 적용해 봤으면 한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궁금증과 의문이 생기고, 이는 여백으로 남는다. 그 여백을 채워 나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고전 읽기를 통해 여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권한다. 2천여 년 전 동서양 선현(先賢)들이 쓴 고전이 왜 아직도 후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칠까? 그만큼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선현들은 고전을 통해 인류가 겪어야 할 수많은 과제와 해법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여백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고전에 담긴 내용은 일단 읽기도 어렵고, 어렵사리 읽어 내도 풀어내기 힘든 여백이 생긴다. 사고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씨름하면서 여백을 채워 가다 보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전 읽기의 묘미가 다가온다. 좁게 보면 독자 스스로 새로운 시야가 트일 수 있고, 넓게 보면 여백에 새로운 시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전 읽기는 아무래도 청소년들에게 버거운 일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멘토가 있으면 고전과의 만남이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군포시 도서관은 동서양 고전 독서를 도와주는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고대시대 진시황과 한비자, 장자, 사마천, 독일의 대문호 괴테, 프랑스의 작가 프루스트, 체코의 소설가 카프카 등과 대화할 수 있다. 물론 이름만 들어도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강사와 함께 이들의 작품을 읽고 글쓰기를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로 도서관 출입이 어려운 만큼 지역 서점에서 원하는 도서를 받을 수 있는 ‘동네서점 바로대출 사업’을 8월 말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책에 접근하기가 한결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책 읽기만큼 좋은 학습 방법은 없다고 한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과 상상력 증진은 창의성을 자극한다. 문화적 마인드도 키워 준다. 사람들 간 소통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시민들 자신은 물론이고 공동체 전체의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군포시장에게는 군포의 도시 개발(開發) 못지않게 시민들 개개인의 계발(啓發)과 이를 통해 공동체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전자가 인위적인 사업으로 가능한 반면에 후자는 시민들 스스로의 깨우침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에 독서, 특히 고전 독서가 한몫할 것이다. 

여름휴가 절정기다. 폭염이 거세다.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외부 활동에 갖가지 제약이 따른다. 집콕을 선택하는 시민이 많으실 거다. 집에서 얼음물에 발 담그고, 먼 옛날 선현들은 어떤 고민을 했는지, 고전을 통해 선현들과 대화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프랑스 대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장 자크 루소가 꿈꿨던 세상은 무엇인지, 루소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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