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가히 살인적인 더위다. 우리 서구도 살수차를 활용한 물살포 작업과 주위 온도를 낮춰주는 쿨링포그 시스템, 무료 생수 냉장고와 시원한 무더위쉼터 운영에 손 선풍기 등 편의 물품 전달까지 폭염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 대책에는 공통점이자 모순이 있다. 폭염을 이겨내기 위한 결정적인 도구가 에너지 사용이라는 점에서다. 에너지를 쓰면 쓸수록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폭염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구조다. 전 세계가 모두 나서 ‘2050 탄소중립’을 외치는 가운데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날을 보내며 ‘과연 탄소 저감이 가능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기후변화 적응대책도 많지 않은데 정작 더 시급한 저감대책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이번 도쿄올림픽만 봐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극심한 무더위 속에 치러진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이 쓰러져 구토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올림픽 2연패에 나섰던 박인비도 "골프 인생 20년 만에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체감온도가 40℃라니. 하계올림픽 시기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11월, 겨울에 열린다. 50℃를 육박하는 카타르의 여름을 피하기 위해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2014년 공개된 5차 평가보고서를 통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대비해 2℃ 이상 증가하면 인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2018년도에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상승 폭을 1.5℃ 이하로 억제해야 생태계, 식량, 보건 시스템 등에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겨우라 여길 0.5℃를 줄이는 게 우선 급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자유롭지 못하다. 온도 상승폭이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국가이자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범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석유 소비 세계 8위, 전력 소비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에 석탄화력 투자는 무려 세계 3위다.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이산화탄소 누적을 많이 한 나라는 그만큼 책임을 더 물어야 한다"는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연구원의 말에 가슴이 철렁하다. 

후폭풍은 이제부터다.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엔 빨간불이 켜졌다.  탄소배출이 많은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거다. 우선 적용될 업종은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기 등 5가지다. 우리나라로선 경제까지도 흔들릴 수 있는 문제다. 먼 훗날 얘기가 아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자 위기다. 힘들고 고통이 따르겠지만 탄소중립을 더는 미뤄서도 담론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의 생태환경이 얼마만큼 변했는지부터 인식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에 있어 개인과 가정, 단체와 기관·기업, 지자체와 국가가 발 맞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서구만 해도 크고 작은 실천과제를 당장 할 수 있다. 석유화학공장과 발전소를 이미 계획한 수소 생산체제로 앞당기자. 수도권매립지 유휴부지에 계획까지 수립했던 태양광발전소를 다시 서두르자. 기후변화 물질을 많이 발생시키는 여의도보다 큰 수도권매립지 제2매립장에는 매립가스를 수소로 만들어 스마트에코농장을 운영하고, 스마트에코시민공원도 조성하자. 쓰레기 역시 직매립과 소각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만큼 서구처럼 재생연료유나 수소로 만들어내는 자원순환 선진화 모델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 악취를 내뿜는 오염된 하천도 마찬가지다. 서구가 해나가듯 생태하천으로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느티나무를 심어 산책길을 조성하면 된다. 건물 하나를 지을 때도 설계 단계부터 제로 에너지를 검토하는 서구식 스마트에코모델을 추진해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일상생활에서부터 에너지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에어컨을 틀더라도 최적 실내 온도인 26~28℃를 지키고 핸드폰 충전도 적정시간을 맞추는 거다. 이렇게 하나씩 줄이다 보면 기후변화 저감대책 역시 해낼 수 있다. 폭염과 탄소중립의 역설을 깰 당장의 실천적 행동이 절실한 시기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