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우리 사회에서는 수년 전부터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돼 왔다. 과거엔 비행기 승무원과 같은 서비스직 종사자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모든 직업인에게 ‘밝고 친절하게’라는 감정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엔 교사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교사에 대한 요구는 날로 증가해 교사가 단순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든, 사도를 실천하며 투철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든 힘겨운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문제는 감정 소외가 교사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교육 전반의 문제가 돼 간다는 것이다. 

감정은 자기 내면의 자아가 보내는 신호이다. 그 감정이 감정노동자의 페르소나(persona)처럼 거짓이거나 억지로 꾸며 낸 것일 때 내면의 자아와 실제 자아는 양분된다. 여기서 자기 자신이 가짜라고 느끼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소외(疏外)로 이어진다. 예컨대 교사가 무분별한 학생과 반이성적인 학부모들에 의해 간섭을 받고 비난을 당하며 폭력까지 당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거의 테러 수준의 마음의 상처를 입고도 화를 꾹 참고 친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는 교사의 윤리의식의 발동이다. 좀 더 나아가면 사건 후 동료 교사들에게 호소하며 부당한 그들의 행태에 분노의 뒷담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고작이다. 그 뿐이랴. 참고 응대하는 상황을 연출할 경우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흔하게 발생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교사가 감정 소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교사가 처한 업무환경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즐거운 학교, 교사, 학생 상호 간에 배움이 일고, 교사는 오래 근무하고 싶고 학생은 오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는 초석이기도 하다. 둘째, 교사는 서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컨대 미국 NASA에서 근무하는 청소부들은 "우리는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긍심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처럼 교사는 혹여 남이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가르치는 일의 의미를 찾고 지위나 대우를 기준으로 한 수직적 세계관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셋째, 교사는 다면 정체성(multi identity)을 가져야 한다. 교사가 특정 역할만을 할 때는 상처를 많이 받지만, 자기를 구성하는 다른 정체성이 많을수록 상처의 크기와 범위 자체를 제한할 수 있다. 이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느끼게 된 부정적 정서가 특정 역할 밖으로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처방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학생과 학부모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즉, 자기(자녀)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남보다 출세해 타인보다 앞서고자 하는 욕망 등으로 충만해 있다. 이러다 보니 그들에겐 만족이 없다. 예컨대 평소 잘해 줘도 항상 그 이상을 요구한다. 어쩌다 한 번 기대에 못 미치면 안면몰수하고 꼬투리 잡아 침소봉대(針小棒大)한다. 여기에 교사는 방어 능력이 약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기준이 높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감정노동이 힘든 이유는 내 마음대로 관계를 끊고 맺을 수 없어 자율성이 낮고, 갑을 관계처럼 상대와 내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느낄 수 없기에 연대성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스스로를 개방(open)할 수 있는 세계를 의식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운동(취미) 동호회, 학생 지도를 위한 전문적 학습공동체, 소그룹의 독서토론회 등을 만들거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친목회 등 자기를 오픈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연대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나마 자신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교직에서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라고 일컫는다. 이것이 교사의 감정 소외를 극복하는 처방전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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