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가장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성관에 대한 조사 결과가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 저)에 나옵니다. 잘난 체하는 사람, 즉 교만한 사람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교만의 반대말은 겸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다, 그러므로 나도 교만할 수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여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교만한지 겸손한지를 알 수 있을 때는 상대의 실수를 대면할 때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111가지」(박민호 저)에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중국의 고위 관리를 자신의 만찬에 초대했을 때의 일화가 나옵니다. 만찬이 끝나갈 무렵 입과 손가락을 씻는 물이 담긴 ‘핑거볼(finger bowl)’이 나왔는데, 중국 관리는 그 물을 시원하게 마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영국 관리들은 "몰상식한 사람"이라며 그에게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습을 본 여왕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 행동을 통해 인격의 수준을 짚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여왕은 태연히 중국 관리가 한 것과 똑같이 그 물을 마셨습니다. 초대받은 중국 관리는 서양의 식사예절을 몰랐기 때문에 그 물을 마신 것뿐이었습니다. 여왕은 그가 무척 당황할 것을 알고 자신도 마신 것이었죠. 여왕의 태도는 겸손함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태도입니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정진홍 저)에서 저자는 미국민의 존경을 받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연설회장에서 그는 "제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지 그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에게는 아홉 가지 재능이 있는데요. 첫 번째 재능은 한 번 들은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탁월한 기억력이고, 두 번째는, 에…, 그러니까 그게 뭐더라?"라고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배꼽을 쥐고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가 첫 번째 재능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교만함을 보았겠지만, 두 번째 재능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농담이었음을 알았고 나아가 그의 겸손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박수와 환호 소리가 연설회장을 가득 채웠을 겁니다.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 때문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겸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지위에 어울리는 대접을 늘 받아 왔고, 그래서 그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비로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일화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뉴욕의 번화가에 있는 맥도날드 앞에 고급 리무진이 서더니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가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햄버거 4개를 주문한 다음 남들처럼 줄을 서서 햄버거가 나오길 기다리던 그를 어느 시민이 알아보고 물었습니다. "아니,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닙니까? 이렇게 귀한 분이 햄버거를 사려고 줄을 선 것도 놀랍지만, 한꺼번에 네 개씩이나 주문할 만큼 대식가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꺼번에 4개씩 먹는 대통령이라면 국고를 거덜 내기 전에 쫓아내야겠지요. 저 차 안에는 비서와 경호원과 운전기사가 있답니다"라고 말하자 시민은 "그러면 그들을 시키면 되지 왜 대통령께서 직접 사 가십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때 루스벨트는 "저들이 나를 위해 일을 하고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저들도 미국 국민이란 것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심부름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대통령의 겸손한 태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겸손함은 상대를 귀한 존재로 인식할 때 나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교만한 이유는 ‘나’만 귀하다는 잘못된 자기 인식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교만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 자신의 태도를 늘 되짚어 보게 되고 점차 행동을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늘 겸손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면 자신의 교만에 대해 변명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누구나 겸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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