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초·중·고·대학의 2학기 개학이 지난 요즘,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찾아와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다. 한낮에는 청명한 하늘이 높은 가운데 그야말로 눈부신 따스한 가을 햇살이 비추면 마음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몸도 대기의 기운을 느끼고자 활기차게 리듬을 타는 것 같다. 이때가 되면 우리 조상들은 연례적으로 여기저기서 포쇄(曝曬)라는 행사를 거행했다. 이는 ‘책이나 옷 등의 습기를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건조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전래하는 공사(公私) 서적의 포쇄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공민왕 11년(1362) 8월의 기록에 남아 있다.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시키자 왕은 복주·청주 등지로 피난 가 있을 때 유도감찰사가 사고에 수장됐던 실록사고를 포쇄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의 포쇄를 매우 엄격히 했으며, 포쇄하면서 점검하고 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기록이 ‘실록포쇄형지안’이며, 해당 사고(史庫)와 춘추관(春秋館)에 각각 보관됐는데 임진왜란 전후부터 조선 말까지 포쇄를 위해 사관이 파견된 경우로 외사고(外史庫)가 모두 234회나 된다고 전해진다.

필자는 이런 문화적 전통을 현대의 삶에 적용해 실용적인 의미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즉, 포쇄를 단지 책이나 옷 등의 대상으로 제한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까지 확대하는 지혜가 그것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세상사에 찌든 인간의 마음도 포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에서 교육하는 사람들은 신학기인 요즘 분위기를 일신(日新)해 새로운 교육의 장을 펼쳐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두 해에 걸친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모든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아 갔다. 긴 장마에 지치고 피해로 인한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농부의 마음처럼 학교 현장은 비정상을 반복하며 많은 교육활동을 연기하거나 포기함으로써 크게 침체돼 있다. 그 속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다. 코로나와 장마에 젖은 정서와 기운을 포쇄해 분위기를 반전하는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코로나 시대에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상당수가 자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집단생활의 규율과 책임을 번거로워하고, 사회성 결여로 인해 친구들과의 교류조차 기피하거나 꺼려 한다. 부모에게 자퇴시켜 달라는 막무가내의 행동만이 존재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두 손 들어 항복한 부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한다. 거기엔 명목상으로 부모·자식 간 무분별한 갈등과 반목이 싫다는 이유가 크다. 교사 또한 감염 위험을 이유로 거의 모든 교육행사를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심지어 대화도 꺼려 한다.

요즘 언론매체는 온라인 수업이 가져온 학생들의 교육격차와 학력 저하 등을 이유로 학교교육에 불신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교육당국은 방역을 내세워 여전히 학교를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 이렇게 청소년 교육의 보루인 학교가 젖은 나뭇잎이 돼 있다.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까지 불을 밝히던 과거 학교의 모습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돼 간다.

이제 우리 교육을 살려야 한다. 거기엔 철저한 방역과 함께 ‘위드(with) 코로나’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특히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없이 오직 인재 양성에 의존해 오늘의 국력을 키워 온 대한민국은 21세기에 합당한 인재교육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 학생과 학부모가 지치고 힘들어할 때 누가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오직 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교육자들만이 젖은 마음을 포쇄할 수 있다. 우리에겐 유일한 희망이 교육이고 그 중심에 교육자들이 있음을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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