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 나사렛국제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조민근 나사렛국제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인류는 ‘발열 공포증’을 앓고 있다. 어디를 가든지 체온을 측정해야 하고, 37.5℃를 넘게 되면 ‘코로나 의심환자’라는 낙인과 함께 자가격리를 하게 된다. 새롭고 다양한 감염병의 반복 출현으로 인한 피해는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한편으론 신종 감염병뿐만 아니라 잊고 있었던 질병들도 다시 유행하면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니 관심이 필요하다. 2019년 1만7천 명의 대규모 유행 후에도 여전히 지역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A형간염을 살펴보자. 

# 깨끗해진 주거환경, 다시 돌아온 A형간염

 A형간염은 위생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후진국형 급성 감염병이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집계로 2021년 5월 한 달 동안 전국에 703명이 발생했으며, 상반기까지 누적 3천 명을 돌파했다. 바이러스 혹은 세균성 장염과 비슷한 수준의 발생률임을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나름 생활수준이 나아진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주거환경 개선과 면역 형성 간 역설적인 관계의 결과다. 과거 자연친화적인 성장환경에서 자라온 세대들은 흙과 가까이 지내며 토양의 미생물, 바이러스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병원체에 대한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을 겪었다. 잔병치레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현대식 주거환경은 이전처럼 자연적인 면역 형성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1970년대 이후 출생자는 A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A형간염에 무방비 상태의 생산활동인구들이 위험하다.

# 식중독처럼 전파되는 감염병

 발열, 복통, 설사, 구토를 호소하게 될 경우 식중독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소변색이 진해지면서 눈과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 소견이 의심될 경우 급성 A형간염의 가능성이 있다. 속히 의사와 상담 후 혈액검사를 비롯한 진단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식중독과 증상은 유사하지만 검사 결과에 따라 급성간염이라는 예상치 못한 진단이 내려질 수 있다. 장염으로 오인되면 진단과 치료시기가 지연되며, 밀접접촉하는 환경에 감염자가 거주할 경우 집단 발병 우려도 있다. 평균 28일 정도의 결코 짧지 않은 잠복기 동안 감염자는 물 또는 음식을 오염시키게 되며, 식중독처럼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급성 A형간염은 2021년 현재에도 전국적으로 주당 1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바이러스계의 스테디셀러 같은 존재다.

# 간이 앓는 독감? 치료제도 없어

 A형간염이 진단된 환자는 발열, 구토, 설사와 식욕부진으로 인한 탈수가 발생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발열과 탈수에 시달리는 모습은 독감과 유사하지만 기침과 가래는 없다.

 신종플루에는 ‘타미플루’라는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했었지만, A형간염은 마땅한 항바이러스 치료제도 없고 회복기간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설사가 멈추고 황달 발생 후 1주까지 전염력이 있으므로 감염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격리병실을 사용한다. 안정가료와 대증치료로 대부분 완치되지만, 전격성 간부전으로 진행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간이식이 필요하다. 

 A형간염 환자와 접촉했던 이들도 진료가 필요하다. 접촉 후 50일까지도 발병 여부를 관찰해야 하며, A형간염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면 의사와 상담 후 접종을 바로 시작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 개인위생은 철저히, 예방접종은 필수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A형간염을 줄여 나갈 수 있을까? 오염된 물, 음식 및 감염자와 접촉으로 전달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식중독 예방법과 유사하다. 올바른 손 씻기, 음식은 잘 익히고 물은 끓여 마시는 등 개인위생이 절실하다. 화장실 사용 후, 음식 취급 전, 환자나 아이를 돌보기 전 특히 손 씻기에 집중해 보자. 

 2015년부터 A형간염은 국가필수예방접종 항목에 추가됐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A형간염 발생률과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소요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6개월간 2차례 접종하게 되며, 부작용도 드물다. 

 면역력 증강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아까지 않는 요즘,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늦기 전에 의사와 상담 후 A형간염 예방접종을 해 보자. 항체 양성률이 100%에 가까운 좋은 가성비의 투자다. 

 <나사렛국제병원 소화기내과 조민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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