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어 가던 8개월 된 영아를 살리기 위해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폴란드의 창던지기 선수 마리아 안드레이칙은 자신의 은메달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아이는 폴란드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수개월째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미국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전해 들은 마리아는 자신이 딴 은메달을 판 돈으로 아이를 수술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물건일 뿐인 자신의 메달이 옷장에서 먼지에 싸여 있는 것보다는 아이의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활용된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경매에 내놓은 메달은 무려 1억4천600만 원에 팔렸고, 그녀는 금액 전부를 아이에게 기부했습니다.

제가 마리아가 돼 상상해 봤습니다. 수년 동안 올림픽만을 위해 흘린 땀이 얼마이며, 훈련을 위해 일상의 재미를 포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러니 은메달을 집에 보관해 자존감과 자부심을 맛보며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 까닭에 가난한 집의 한 어린아이가 죽어 가고 있다고 해도 그녀처럼 선뜻 제 메달을 내놓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미련 없이 메달을 내놓은 그녀는 살아있는 천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그 결과가 그에게도 이롭지만 결국에는 나에게도 이로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김하 저)에 알프스의 최고봉에 오르던 등반가 잭의 일화가 나오는데, 그의 삶에서 자리이타적인 삶이 어떤 삶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최고봉으로 가는 좁은 길에 도착했을 때 함께 온 가이드가 악수를 청하며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기억하세요. 절대로 졸아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가세요."

혼자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체력 소모가 컸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길을 잃었습니다. 주위는 캄캄해졌고 찬바람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아직 5마일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몸은 점점 얼어붙었고 다리 근육은 마비돼 걷기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밀려드는 졸음이었습니다. 

눈앞에 어렴풋이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쉬어 가겠다고 생각하고 가 봤더니 바위 근처에서 의식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가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잭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그를 업고 걷는다는 것은 몹시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놓아둘 수만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잭은 결심했습니다. 메고 있던 배낭을 앞쪽으로 옮기고 그를 업은 뒤 한 걸음, 한 걸음씩 캄캄한 어둠 속을 뚫고 베이스캠프로 향했습니다. 예상시간보다 두 배 이상 걸렸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잭이 구조한 그는 동상을 입긴 했어도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뜨거운 커피로 언 몸을 녹이면서 잭은 그때 문득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만일 그곳에 조난자가 없어서 바위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면 자신도 그와 똑같은 처지가 돼 죽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업은 사람과 업힌 사람의 체온이 맞닿아진 덕분에 죽음을 부르는 알프스의 맹추위를 극복했던 겁니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돕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렸더니 나까지도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자리이타가 주는 삶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마리아의 은메달을 낙찰받은 기업이 마리아에게 그 메달을 되돌려준 선행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적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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