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시인
이태희 시인

지난 여름 어느 독서모임에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었다. 명성만큼 ‘거대한’ 책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중학생 무렵에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소년소녀 세계명작’의 원작이었다.

‘얇게’ 간추려진 「백경」은 집념의 한 사나이가 제목이 가리키는 거대한 ‘흰 고래’를 추적하는 이야기쯤으로 기억됐다. 꽤나 시간이 흘러 비로소 ‘원작’을 찾아 읽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에 앞서 완역된 「모비 딕」은 전혀 새로운 책으로 다가왔다.

우선 이 책은 ‘고래학’이라고 불릴 만한, 고래에 관한 방대한 백과사전과 같다. 170년 전 출간 당시까지의 고래에 대한 모든 지식을 섭렵한 것 같았다. 허먼 멜빌 자신이 젊은 시절 상선 선원으로 항해를 했고, 실제 포경선 선원으로도 4년 동안 남태평양을 누빈 경험이 그 바탕이 됐을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 책은 한동안 도서관에서 ‘소설’이 아니라 ‘백과사전’으로 분류된 적도 있었다 한다.

「모비 딕」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이다. 거대한 흰색 향유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빼앗긴 뒤 복수심에 불타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으로 추적하는 그의 열정은 집념의 단계를 지나 광기에 이른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완역 「모비 딕」을 읽으며 소설의 서술자인, 그래서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우선 그와 식인종 내지 야만인으로 알려진 퀴퀘그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퀴퀘그는 어느 섬의 원주민 추장의 아들인데, 백인 기독교 문명을 알기 위해 미국의 포경선을 타러 온 인물이다. 포경선을 타기 위해 낸터컷에 모여든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처음 만나는 곳이 ‘물보라’ 여인숙이다.

둘의 만남은 일종의 문명 충돌에 해당할 만한 것인데, 험상궂은 인물과의 충격적 첫 만남 이후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서로의 문명과 습관을 이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인숙 이름인 ‘물보라’는 ‘물기둥’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포유류인 고래가 호흡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 물을 내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비 딕」을 읽는 내내 지루함을 견딜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선원들의 일상적 행동들이 묻어나는 듯한 위트와 활기였다. 

예를 들어 고래 가죽으로 만든 선원들의 옷은 팔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두 군데를 길게 짼 다음 그것을 머리 위에서 뒤집어 쓰는데, 서술자는 그 옷이 "고기를 잘게 써는 그의 천직에 잘 어울리는 사제복"이 된다고 비유한다.

이런 복장은 항해사 스터브가 자신의 저녁식사 시간에 흑인 요리사인 양털 영감에게 상어가 시끄러우니 상어를 상대로 설교하라는 주문과 연결된다. 이에 맞장구를 치며 흑인 요리사가 실제로 상어 떼를 향해 설교조의 말을 하는 장면 등은 매우 코믹하고 익살스러운 장면이었다. 이런 위트와 재담이 있었기에 선원들이 망망대해의 지루한 항해를 견디며 생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고래에 관한 거대한 탐구의 기록이며 소설로 쓴 고래 백과사전이라는 말은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모비 딕」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소설 속의 두 축인 에이해브와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대단원에서 에이해브와 모든 선원은 죽고 오직 이스마엘만 살아남았다. 퀴퀘그의 ‘관’을 타고서. 여기서 멜빌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가 가리키는 길은 영웅적인 그러나 독단적인 에이해브의 길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모색하고 통합하려는 이스마엘의 길이다. 

두 인물이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도 달랐다. 에이해브가 오로지 ‘모비 딕’을 죽이기 위한 복수심에 가득 차서 항해(삶)를 시작한 것이라면 이스마엘은 바다에 대한 경탄과 호기심에서 항해(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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