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계양산은 인천시 계양구와 서구에 걸쳐 있는 해발 395m 높이의 산이다. 마니산 등 도서지역인 강화의 일부 산들을 제외하고 서울 서쪽 내륙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계양산은 과거 부평도호부의 주산으로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지역의 명칭 변화에 따라 ‘수주악(樹州岳)’, ‘안남산(安南山)’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산성(山城)이 있어 ‘고성산(古城山)’, 그 산성을 이 씨가 수축했다고 해 ‘이성산(李城山)’, 날씨를 알 수 있다고 해 ‘일기예보산’ 등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산 이동 설화’의 한 유형으로, 강화의 마니산 한 자락이 떨어져 나와 계양산이 됐다고 해 ‘형산’인 마니산의 상대적 개념으로 ‘아우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이칭과 별칭을 가진 것은 계양산이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계양산은 주변 주민들에게서 화제의 중심이 돼 많은 이야깃거리가 양산됐다. 이런 과정에서 생성된 것 중 하나가 설화이다. 

현재 계양구와 서구에 전해지는 설화의 상당수는 계양산과 관련 있다. 이 설화들 중 도둑과 관련된 설화가 여러 편이 있어 주목된다. 계양산의 도둑 설화는 대부분 징매이고개 또는 징맹이고개라고도 불리는 경명현과 관련 있다. 서구 공촌동에서 계양구의 계산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경명현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을 서울로 옮겨 가기 위한 통로 역할을 했다. 서해안에서 서울에 이르는 최단 경로였기에 경명현에는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이 많아 이를 노리는 도적떼들의 출현이 빈번했다. 

경명현은 ‘천명 고개’라고도 한다. 이 명칭은 도적의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천 명의 사람이 모여 함께 이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명칭이 붙었을 정도로 경명현에는 도적들이 극성이었다. 바로 주변에 부평도호부 청사가 있었음에도 관군들의 대응은 적극적이지 못했던 듯하다. 그것은 당시 도호부의 관군이 도적들을 토벌할 능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1560년(명종 15년) 부평도호부 부사로 부임한 신건(申健)이라는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경명현의 도적을 소탕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그 이후로 경명현의 도적들은 더욱 극성이었다고 전한다. 이에 대한 것은 ‘경명현의 도둑 두목’이라는 설화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설화에는 새로 부임한 부사가 도적들을 소탕하려고 군졸들을 이끌고 경명현으로 나갔으나 재주 많은 도적의 두목에게 군졸들을 모두 잃고 자신은 도망친 것으로 나온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부사가 부평도호부의 부사 신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도적들의 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명현은 ‘임꺽정 고개’라고도 한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피장’편에서 임꺽정이 스승에게 검술을 배운 곳이 바로 계양산 경명현이라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소설 「임꺽정」에는 ‘청년 임꺽정이 인천 부평의 구슬원 인근에 검술을 잘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양주에서 계양산을 찾아오고, 수소문 끝에 노인을 만난 임꺽정은 옳은 일에만 칼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고 1년 반 동안 이곳에 머물며 검술을 배운 것’으로 돼 있다. 이로 보면 작가 홍명희는 계양산의 내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의적 임꺽정의 수련지를 계양산으로 설정한 점과 계양산 ‘장사굴 설화’의 도사를 연상시키는 검술 스승을 등장시킨 점에서 그렇다. 어쨌든 계양산 경명현은 전승되는 설화나 별칭에서만 봐도 도적의 출몰이 많았던 곳임이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도적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명현의 설화에 등장하는 도적들은 일반 행인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천명 고개’ 설화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훔치거나 빼앗은 물건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의적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소탕하러 온 관군을 기지와 능력을 발휘해 물리치는 모습을 비교적 긍정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도적들보다 더 도적과 같은 행위를 했던 지배계층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가지로 혼란한 상황인 오늘날에도 반추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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