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하남시의회 의원
박진희 하남시의회 의원

바야흐로 ‘하남개발시대’다. 하남은 2040년 인구 42만 명을 목표로 도시계획안을 수립 중이다. 물론 도시기본계획은 법정계획이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틀은 유지하되 하남의 차별성과 비물리적, 연령별 등 다양한 변화에 대해 일관성 있는 현실적인 정책안으로 하남의 완성도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하남의 개발은 현재 지하철 5호선 연장 노선인 하남검단산역, 하남시청역을 중심으로 1990~2000년대 초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풍산지구, 미사강변도시에 이어 최근 감일·감북지역도 대규모 인구 유입이 진행되면서 올해 하남시 인구는 30만 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급속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수도권은 예로부터 인구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고구려·신라·백제는 인구 등 자원이 풍부한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쟁패를 벌였고, 결국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비록 불완전하게나마 삼국을 통일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 지역에 수많은 문화유산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16년 남한산성의 능선인 하남 금암산(광암동 산 42번지 일원)에서 신라 석실묘와 석곽묘 등 고분 6기가 확인됐다. 고분에서는 인화문평구병, 유개완, 청동경(거울), 청동 숟가락, 철제 과대금구 등이 나왔다. 고분은 선조의 삶의 양식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 중의 하나다.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하사창동 철불)은 일찍이 발견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하사창동 철불은 태평2년(977)의 명문이 있어 현재 하남시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가까운 하사창동의 넓은 평야와 수로를 배경으로 융성했을 천왕사에 봉안(945년 이전)됐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대형 철불을 봉안할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는 추정은 하남지역이 이를 뒷받침할 수준의 인구와 경제력을 지닌 지역이었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러나 하남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는 걸맞지 않은 면도 있다. 교산신도시 건립에 따른 박물관의 실제는 수장고 수준에 불과하다는 언론의 지적이 있었던 것이 불과 3년 전이다. 선사유적지라고 자랑하는 하남의 미사리 선사유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아는 시민이 거의 없다. 인근 서울 강동구청이 ‘암사선사문화제’를 해마다 개최하면서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과 비교된다. 다행히도 최근 하남시를 중심으로 교산신도시의 옛 유물·유산뿐만 아니라 근대의 무형 유산도 기록으로 남기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개발논리에 의해 훼손된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기에 그러하다. 감북지구 개발 중 발견된 고분군은 아파트 건립에 방해가 된다고 찬밥 신세다. 하남의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이성산성에 대한 발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성산성은 고구려벽화에만 보이던 요고(허리에 차는 작은 장고), 려척(또는 당척이라는 도량형 측정기구, 현재의 자) 등이 출토된 곳이다. 목간도 상당수 발굴돼 우리 선조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기록까지 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그러나 정작 신도시 유입인구는 하남에 이성산성이 있는지, 이성산성이 왜 중요한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삶을 편안하게, 풍요롭게 하는 개발은 필요하다. 그러나 삶의 질을 높이고 정신세계를 살찌울 수 있는 가치체계도 중요하다. 한민족 고대 금속공예품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국보제287호, 1996년 5월 30일 지정)’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주차장 공사 중 발견됐다. 하남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유물이 출토되지 말라는 확증은 없다. 개발논리 시대에 어리석은 소견일지는 모르겠으나 소중한 선조의 유산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개발이라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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