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느티나무는 향수의 상징이다. 고향이 그리워질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무다. 이향민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 고향 정경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 가운데 오래도록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느티나무다. 흔히 정자나무나 당산목으로 불린다. 서울 재동 백송, 대구 도동 측백나무 등의 천연기념물과는 격이 다르다. 쉬이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우리네 일상생활과 더 친연하다. 

나는 매년 한가위 즈음 성묘 차 고향 선산에 벌초하러 간다. 그때마다 맨 먼저 반겨 주는 것이 고향마을 입구에 자리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향리를 지켜주는 수호목, 집도 사람도 다 낯설건만 반백 년 만에 마주하는 고향 순정을 그대로 품고 다가온다. 단오절이면 마을 사람들의 구경 속에 동네 처자들이 풀색 저고리 다홍치마에 속옷을 휘날리며 쌍그네 타던 모습이 아련하다.

이즈음 정치판은 아수라장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성남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사태는 그 몸통은 물론이려니와 국회의원, 특별검사, 전 대법관 등 상류 권력층이 얽히고설켜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제1야당의 대선 경선이 불투명하게 진행돼 불신을 사고 있다. 황교안 예비후보는 "지난해 4·15 국회의원선거는 전면 부정선거였으며, 중앙선관위가 주범이고 대법원이 증거인멸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력 주장하고 있다. 차제에 야당 자체 경선 관리로 불신 의혹을 차단할 수 있음에도 중앙선관위에 경선 과정을 맡겨 진행하고 자료 폐기 논란 같은 문제로 시끄럽다. 도둑에게 집 열쇠를 맡기는 격이라 한다. 일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와중에 고향마을 느티나무 같이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은 분이 있어 살펴본다.

나는 지난 2년여간 장기표 선생의 언행을 틈틈이 주시해 왔다.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 등등 여러 공치사 경력은 거론치 않는다. 직접 뵙거나 그를 깊이 천착한 바는 없다. 예술가로서의 내 직감적 느낌을 약술하는 거라 보편적 평가와는 다를 수 있다. 

첫째, 그는 순수하다. 겸양과 아량으로 이어진다. 신경림은 시 ‘다시 느티나무가’에서 ‘어릴 때 커 보이던 느티나무가 청장년이 되어 보니 작게 보이다가 노년이 되니 다시 크게 보이더라’고 했다. 노년에 다시 커보인 것은 어릴 적 순수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장기표 선생이 지난해 4·15 총선을 부정선거로 인정한 것은 바로 이 느티나무 같은 순수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검·판사 출신으로서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과는 다르다. 그런 부정이 있었다면 그의 지난해 김해을 선거나 지난달 제1야당 대선 1차 경선 결과도 실제와 다른 것이다. 

둘째, 그에게는 나라를 바르게 하려는 혁명정신이 살아있다. 다른 나무들이 다 사라진 뒤에도 꿋꿋이 새 나달을 살아가는 느티나무 같이 변혁에 앞장서는 모습은 76세의 나이와 상관이 없다. 혁명은 기존 질서를 단번에 뒤집어 버리는 것일진대, 작금 나라 상황이 그만큼 엉망이라는 반증이다. 「장기표의 국가혁명」이라는 책이 이를 질타하고 있다. 민주노총·주사파·대깨문·전교조·탈원전·미친 집값·공기업을 ‘망국7적’이라 해 1년 안에 고치겠다는 대선 공약은 가히 혁명적이다. 

셋째, 그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은 한결같다. 긴긴 세월 한 곳에 우뚝 서서 쉼터를 제공하며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와 같다. 지난 8월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단식농성이나 대장동 게이트로 좌절한 청년들을 향해 이달 초 행한 홍대 인근 길거리 연설은 그의 한결같은 애민정신의 발현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변절, 철새, 기회주의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앞서 보면서 소신에 따른 결정이기에 많은 실패에도 좌절이 없다. 호모데우스(Homo Deus) 시대 도래를 예측하는 혜안은 나의 시상(詩想)과 통한다. 탁월한 정치사상가 내지 정치철학자이며 몸소 실천하는 분이다. 이른바 ‘정치문화재’로 자부하는 그의 말에 손색이 없다. 그에게는 청솔을 넘어 늘 서민과 함께 하는 느티나무가 더 제격이다. 다가오는 신문명시대, 강태공처럼 장수하시어 장차 이 나라 위대한 원로 지도자로 활약하면 좋겠다. 시조 올린다.

- 자아실현 송(誦) -

반백 년 세월 동안
앞선 만큼 넓고 큰 꿈
 
부울 때면 떨어진 게
한 톨 두 톨 씨로 쟁여
 
마침내
함께 뿌릴 때
행복 꽃밭 일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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