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초등학생 시절, 친구와 염전에서 헤엄치다가 그만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죽는구나"를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물속으로 가라앉다가 어느 순간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을 때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면 될 테니까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바닥이 보이고, 그때 다시 도약할 희망을 발견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 순간의 고통을 잘 버티면서 견뎌 내야 합니다. 기다리고 있는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요.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훗날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돼 주는 기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2013년 4월 15일,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장 결승선 근처에 두 개의 사제 폭탄이 터져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3명이 사망했고 최소 180여 명이 다쳤습니다. 부상자 중 두 다리를 잃은 설레스트 코코런은 한동안 절망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고교생 딸인 시드니 역시 파편으로 인해 다리에 큰 흉터가 남아 큰 충격 속에서 식이장애까지 겪었습니다. 

마치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희망 없이 살던 어느 날, 20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전 참전으로 두 다리를 잃은 미 해병대 출신의 마티네즈였습니다. 그는 모녀에게 "우리는 고통을 받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저 역시 이전보다 더 강해졌거든요. 두 분 역시 더 강해지실 거예요"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모녀를 찾아와 위로했습니다.

거듭된 방문과 위로에 모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청년이 자신의 의족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자신도 잘 지내지 않느냐며 위로하는 모습에서 가슴속의 작은 불씨 같은 것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라고 심경을 말하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테러 현장을 다시 찾은 모녀는 테러 당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절망의 흔적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의족을 벗고 1년 전 피투성이로 누워 있던 곳에서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남은 두 다리에 ‘여전히 서 있다’라는 글을 적어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테러범들이 내 두 다리를 앗아갔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여기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시드니 역시 자신의 배에 ‘당신들이 나에게 흉터를 남길 수는 있지만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라는 글을 보여 줬습니다. 

코코런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갖고 있고 우리는 이를 감싸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 상처들로 인한 역경을 누구나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연을 접하면서 두 다리를 잃었음에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와 용기의 말을 전하는 마티네즈의 모습이 오래 기억됩니다. 

마라톤대회에서나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었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불행입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더 절망적인 불행을 맞느냐 아니면 오히려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후자였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도현 시인이 전하는 전단향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책 「나는 당신입니다」에서 인도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 갈라지면서도/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대단한 사랑입니다. 자신을 내리찍는 도끼날을 향해 원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고운 향기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이라니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 지혜를 얻고, 이 지혜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누는 태도가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서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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