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박진호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일제강점기 갯벌을 따라 조성된 북성포구, 만석 그리고 화수부두 주변은 인천 근대 역사가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주변 지역 어부나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추억들이 가끔 언론매체에 등장하곤 한다.

지리적 형상을 보면 땅과 바다가 들쑥날쑥 엮인 부두 형태로 조성돼 있고 배후에는 화도진지와 같은 역사적 장소, 과거 어촌의 잔재 등과 함께 근대산업 유산들도 자리하고 있다. 만석부두에서 바라보면 멀리 영종도, 강화도, 청라가 한눈에 들어와 인천 최고의 풍경과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천에 살면서도 이곳을 알지도, 방문해 보지도 않은 시민들이 많음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을 걷다 보면 금세 이해가 가게 된다. 해안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도 않고, 환경은 으스스하고 비인간적이며, 원도심과의 공간 흐름이 구조적으로 막혀 있어 도심에서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 이면에는 부두와 원도심 사이에 낀 엄청난 공장지대가 어떤 경계공간을 형성함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군수공장이나 비료공장 등이 떠나간 자리엔 현재 양곡 및 비료공장, 조선소, 목재공장 등이 위치해 있다. 이 경계공간은 도시 산책도, 도시 성장도 어려운 고립무원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엔 1호선 전철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이 부두 주변의 폐공장들에 대한 시설 보존과 재활용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 폐공장 수준을 넘어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지닌 산업유산도 있다. 일진전기처럼 일제 군수공장에서 이어온 공장이 있는가 하면, 동일방직과 같이 한국 여성 노동운동사의 상징적 장소도 있다. 이러한 산업유산을 체계적인 관리계획을 통해 잘 보존·활용하는 일은 후세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계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공장지대가 지역의 공간적 흐름을 막고 도시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형국이다. 난맥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 경계영역에 새로운 피를 수혈함으로써 막혀 있는 도시의 혈을 뚫어야 한다.

공장을 외곽으로 서서히 이전시키면서 도시 공간구조를 재구성, 항구도시로의 지형이나 지역 회복을 이뤄야 한다. 더불어 이 경계지역에 국비, 시비, 민간 자본 등을 유치해 굴뚝산업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문화·지식산업을 육성하면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꾀해야 한다.

한 국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인천은 하이테크 산업의 총 부가가치 비중이나 연구개발의 양적·질적 수준이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하위에 위치한다. 시도별 정보화 수준이나 연구장비 구축 수준 등 과학기술활동의 환경 기반 조성도 최하위에 있다. 인천에 거주하는 첨단 인적 자원이나 과학기술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인프라 수준 등도 모든 지표에서 하위에 있다. 과학기술의 인적 자원도 전국 평균 이하이다. 수도권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지표 수준이다. 이는 인천이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형 산업모델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한다. 

저임금 노동집약 산업의 덫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의 21세기형 산업 유치를 통해 인천시민의 일자리와 소득 수준 향상, 깨끗한 주거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젊은이들이 살지 않게 되고, 도시는 늙어 가고 슬럼화되기 마련이다. 인천, 특히 부두 주변의 동구를 필두로 한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저출산 고령화 지역이고, 과도한 인구 유출로 학생 수가 해마다 줄고 있고, 초·중·고 폐교 수가 전국에서 압도적으로 많기도 한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먼저 이 경계공간을 해체해야 하고, 이곳을 ‘미래의 새로운 축’으로 설정하고 혁신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부두의 배후에는 인문학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근대문화유산이 자리잡고 있고, 부두 주변의 공간구조와 산업구조의 재편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면 강을 끼고 있는 서울의 위성도시·관문도시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품은 최고의 항구도시로서 독자적인 도약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에도 이 지역은 장기간 소외되고 방치돼 왔다. 무책임하게 미래세대에게 짐을 떠넘길 수는 없다. 이제라도 시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부두 전반의 상황과 원도심을 연계한 도시 재구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야적장, 폐조선소가 있던 노쇠한 항만도시들이 국제적 문화·관광·첨단산업도시로 발전한 해외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참조해 정쟁이나 표심을 위한 이벤트가 아닌 오직 시의 발전적 미래만 바라보면서 혁신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시의 목표와 의지가 명확하다면 중앙·지방정부의 정책적 협력과 지원, 시와 기업의 공감대 형성, 나아가 지역주민과 정치권까지의 협력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시의 혁신적인 행보와 역량 발휘를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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