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한 인간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 어부가 낚싯줄에 걸린 큰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장면은 고단한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칠흑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혼자 물고기를 잡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배에 찾아온 작은 새 한 마리에게 반가움과 친근감을 느껴 대화를 시도할 정도로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고기를 잡는 것은 매우 무섭고 쓸쓸한 일이다.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일 때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리라. 물고기를 배로 끌어올리기 위해 낚싯줄이 끊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당기자 손에서 피가 흐르고, 물고기가 버둥대면 노인은 배에서 뒤로 넘어지고, 부딪치고를 반복한다. 

쿠바 아바나 선착장에 가면 ‘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아바나 시내에는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소설을 집필했던 호텔, 동네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던 클럽 등 헤밍웨이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바다라는 자연은 그에게 커다란 매력 요인이다. 거기에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건축물, 카리브의 포근한 도시 풍경이 그를 아바나에 오래 머물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현대식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고풍스러운 경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게 했으리라. 아바나는 헤밍웨이가 있어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도시가 됐다.  

사실 쿠바는 한가로이 낭만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 1962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소련이 쿠바에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 기지들을 건설하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를 취했다. 그는 소련의 "도발적인 위협에 대해 단호한 군사적 행위를 서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쿠바의 경제적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 봉쇄에 대해 유엔은 쿠바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21년 6월 쿠바에 대한 미국의 봉쇄를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찬성 184개국, 반대 2개국으로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쿠바 봉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권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목록에 쿠바를 올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는 쿠바 가정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먹고 사는 생존의 위협이다. 유엔 총회 투표 직전에 연설한 쿠바 외무장관은 "미국의 봉쇄가 쿠바 국민에게 가져온 위험은 헤아릴 수 없다. 미국의 비인간적인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쿠바 가정은 없다"라고 지적한 것을 보면 국민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 조그만 배에서 목숨을 걸고 물고기를 잡는 노인처럼 쿠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쿠바 도시농업의 토대가 됐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농업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생계에 위협을 받은 시민들이 도심 내의 빈터에 작물을 심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면서 발달했다. 쿠바 정부는 개인들이 주택 내의 공터, 옥상 등에 작물 재배를 지원했다. 이것이 쿠바 도시농업의 모태가 됐다. 쿠바 도시농업 핵심은 ‘오가노포니코’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생태적 농업을 하는 텃밭 형태의 유기농 농장이라는 의미다. 전통적인 퇴비가 작물의 자양분이다. 모든 생물은 스스로 병해충을 극복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고 있는 건강농법이다. 

쿠바는 농촌지도를 통해 농업교육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 경제 봉쇄 조치를 이겨내고 식량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태농업의 모델이 됐다. 도시농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식량문제 해결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도시 근교에는 수많은 작은 농장들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쿠바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주민은 신선한 유기농 식재료를 근거리에서 얻을 수 있어 좋다. 

현대 도시에서 도시농업은 생산적 목적을 넘어 치유의 수단이 돼 가고 있다. 서로 남남처럼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대화와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도시농업으로 작물 수확과 함께 도시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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