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으로 ‘서해안’을 쓰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야말로 오만 일곱 가지 생각이 마구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해서 ‘서해안’을 중심으로 저의 과거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확인해 보니 제가 처음으로 서해안을 통해 독자들과 만난 시점은 2008년 9월 9일이었군요. 타 언론사에 근무하다 적을 옮긴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지요.

당시만 해도 기자 5명이 서해안을 책임지다 보니 부담감이 이루 말하기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고정란을 메꾸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요. 흔히 말하듯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했으니까요. 

어느 날인가부터 기자들의 ‘아우성’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웠는지 서해안 필진이 10명으로 늘더군요. 물론 처음엔 여유가 생겼지만, 저란 존재 자체가 본디 간사한 족속인지라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벗어던지고 싶었습니다. 

손 꼽을 정도지만 뭔가 ‘꺼리’를 찾았을 땐 빨리 차례가 돌아오길 목을 뽑고 기다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60∼70% 정도는 소재를 찾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다 마감시간을 놓치기 일쑤였지요. 이 공간을 빌려 오피니언란 담당 주필님과 편집기자에게 사과드립니다.

노느니 장독 깬다고 지금까지 제가 ‘서해안’을 몇 꼭지나 썼나 궁금해서 세다가 300을 넘기고는 포기했습니다. 그걸 집계한들 숫자에서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죠. 핵심은 내용일 텐데 단순히 건수 세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여전히 애착이 가는 글이 없지 않지만, 저를 쥐구멍으로 인도하는 글들도 수두룩합니다. 당장이라도 뽑아 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비록 저는 이 공간과 작별하지만 언제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해안’을 바라보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이 공간에서 만큼은 공자님·맹자님 말씀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마나 한 훈계나 조언도 금물입니다. 속으로는 왼새끼를 꼬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보살 하는 글도 피해야겠습니다. 진부함과 식상함을 멀리 떠나 보내고 언제나 신선도를 유지하는 ‘서해안’이길 희망합니다. 결과적으로 저 역시 바람을 가장한 어쭙잖은 조언을 한 꼴이군요.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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