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빙산 같은 사람은 인상이 무척 강하고 장엄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인간적인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눈물도 없고 감정도 없고 고집도 셉니다. 그러나 야자수 같은 사람은 주위 환경에 늘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야자수는 어떤 바람도 견뎌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람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은 바람이 잔잔하든 거세든, 폭풍이 불든 그냥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따라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니까요.

「돈과 인생에 관한 스무 가지 비밀」의 저자인 마크 스티븐스는 이렇게 사람을 빙산과 야자수로 비유해 분류했습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 호감이 갈지도 쉽게 이해됩니다. 

야자수 같은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상황을 자기 의도대로 바꾸려고 꾀를 내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와 친구가 돼 비를 즐기고, 눈이 오면 눈과 친구가 돼 눈과 추억을 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왠지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빙산 같은 사람은 강해 보이지만 부드러움이 없습니다. 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품에 안길 수가 없습니다. 안겨 봐야 상처만 입을 테니까요. 쇠처럼 강하기 때문에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정체된 삶을 살게 되고, 그 삶은 고인 물처럼 결국 썩고 맙니다. 

정채봉 시인은 「나는 너다」에서 사람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해서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강자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며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의지하고자 하면 따뜻하게 안아 준다. 약자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의지하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억누르려고 한다. 강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민감하다. 약자는 자신의 감정에만 예민하다. 강자는 어제까지 한 일에 대해서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하고 새로운 방법 찾기에 골똘하지만, 약자는 오늘 하는 일에 대해서도 ‘남들도 다 이렇게 해 왔는걸’ 하면서 길들어진 대로 일을 한다. 강자는 한 가지 큰 문제를 여럿으로 쪼갠다. 그래서 해결하기 쉬운 것부터 차례차례로 풀어나간다. 약자는 작은 문제들이 나타나도 그때그때 풀지 않고 모아 둔다. 그러다가 목전에 당도해서야 갑자기 그 문제 덩어리를 끌어안고 버둥거린다. 강자는 기분 나쁜 대우를 받으면 솔직히 그 불쾌한 마음을 털어놓고 해명한다. 해명한 후에는 그 감정을 즉시 씻어 버리고 다시 평화를 회복한다. 약자는 기분 나쁜 대우를 받으면 겉으로 승복하나 속으로는 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 두었다가 복수하려고 벼른다. 강자는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반가이 맞으며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듯 철저히 하지만, 약자는 모든 것을 늘 보듯이 덤덤히 맞으며 모든 것을 다시 만나서 할 것처럼 적당히 해 둔다." 

정채봉 시인이 말하는 ‘강자’는 스티븐스가 말한 야자수와도 같은 사람이고, ‘약자’는 빙산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잠시 "나는 강자일까, 약자일까"를 자문해 봅니다. 이제까지의 저는 약자로 살아왔다는 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남들에게는 강자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늘 핑계를 대며 살아온 초라한 저 자신이 보였습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늘 빙산 같이 살아온 제가 오늘은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강풍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야자수를 떠올려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전에는 강풍이 강자이고, 야자수는 강풍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약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라도 야자수의 그런 태도야말로 강자의 부드러운 태도임을 깨닫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