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

113분 /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배우 조은지의 장편 연출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는 로맨틱코미디의 외피 안에 ‘관계’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섬세하고 선한 시선이 담겼다. 친숙하면서도 부족한 듯 매력적인 인물들이 복잡하게 꼬인 관계 속에서 허우적대다 서로 생채기를 내기도 하지만, 한 뼘쯤 성숙해지며 다시 보듬는 과정에서 과하지 않은 웃음과 페이소스를 만든다.

7년째 슬럼프를 겪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현(류승룡 분)은 되는 일이 없다. 후배는 어느새 부커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데 출판사와 약속한 마감 날짜가 다가오도록 원고는 써지지 않고, 절친한 친구지만 닦달도 아끼지 않는 출판사 대표 순모(김희원)의 잔소리도 피할 길이 없다.

유학 가 있는 딸과 현처, 고3 아들과 전처 양쪽으로 양육비는 뭉텅뭉텅 빠져나가고 있고, 혼자 남은 아파트에는 글을 쓰지 못한 시간만큼 술병과 잡동사니, 먼지가 쌓여 가고 있다. 뒤늦게 혹독한 사춘기를 맞은 아들 성경(성유빈) 때문에 전처 미애(오나라)를 자주 만나다 보니 잠시 실수할 뻔하다가 그 장면을 성경에게 들키는 바람에 아들과의 관계 개선은 더 요원해져 버렸다.

자신의 잘못으로 오랜 친구와의 관계는 틀어져 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대학생 유진(무진성)이 습작을 봐 달라며 불쑥 다가와 받아들일 수 없는 고백까지 내뱉고는 그의 수업 강의실에 앉아 빤히 바라보고, 현은 줄행랑을 친다. 엄청난 위약금과 양육비의 압박에 벼랑 끝까지 몰려 어쩔 수 없이 읽게 된 유진의 습작은 잠들었던 현의 감각을 깨우고, 유진에게는 단단히 선을 그은 채 공동 집필을 제안한다.

현 몰래 비밀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순모와 미애가 출장을 핑계로 휴가를 떠난 사이, 성경은 종종 마주치는 ‘동네 아줌마’ 정원(이유영)과 어울린다. 관계는 꼬여 버렸지만, 기본적으로 선하고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평범한 인물들이기에 누구에게든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법하다.

사극이나 장르극에서 무게를 잡아 온 류승룡은 힘을 빼고 도전한 일상 연기가 어려웠다고 하지만, 얽히고설킨 관계의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각자 다른 배우들과 찰떡같은 호흡을 보여 준다. 17일 개봉.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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