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나누고 첫눈을 기다린다. 더 좋은 만남, 더 좋은 사연을 기다리면서 첫눈을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 마음과 같이 연인이 동시에 첫눈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운 좋게 첫눈 오는 날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첫눈, 첫사랑, 첫 시험, 첫 면접, 첫 합격, 첫 직장, 첫……. 처음이라 서투르지만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희망을 거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팍팍한 삶이 송곳처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모두가 첫눈을 기다린다. 우리 모르게 첫눈이 온다.

서울 첫눈은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기상청 직원이 눈 내리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봐야 인정된다. 기상청은 ‘기후학·통계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기상관측소에서 목측(目測)’, 즉 눈으로 직접 관측하는 것을 첫눈의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관측한 첫눈을 기상청이 몰랐다는 오해가 나오기도 한다.

첫눈이 누구에게는 희망과 설렘이지만 운전을 하거나 제설하는 사람에게는 긴장과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교육정책과 경제정책, 모든 정책이 설렘과 희망이 되지는 않는다.

힘들고 지쳐 있는 수험생을 그냥 안아 주는 허그(hug)만으로도 희망과 용기를 준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을 교문에서 안아 주던 선생님, 수능을 마친 자녀를 안아 주는 아빠·엄마의 허그는 위안과 힘이 된다.

힘들고 지칠 때 내 이야기로 메시지를 전하고 설득하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만 줘도 힘을 얻을 수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을 그냥 안아 줄 수 있는 정책,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만 줄 수 있는 정책, 그것이 감성정책 아닐까.

거창하고 화려한 말로 포장된 정책이 아니라 감성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배려가 좋은 정책이다. 내년 예산을 결정하는 국회는 아직도 정파 싸움에 내년 예산도 회기를 넘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을 두니 국민은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매년 반복된다. 첫눈이 지역마다 다르게 내리듯 지역마다 감성정책은 달라야 한다.

지역의 관심사는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역주민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지역 일꾼이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교육정책도, 경제정책도, 마을정책도 진행됐으면 좋겠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주는 정치, 희망으로 생활하는 경제를 바라는 것이 서민들이다. 평생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세태, 대학을 나와도 정규직이 될 수 없고, 5년 차 직장생활의 퇴직금이 50억 원이라는 비상식의 사회는 분명 서민들의 희망을 앗아간다.

대학을 마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아빠 찬스가 없어도 공정한 룰로 경쟁하는 사회, 그것이 가능할 때 진정한 선진국이다. 마스크 대란, 요소수 대란, 주택 대란 등 대란만 겪으면서 상처받고 차별받아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두 발 딛고 하늘을 향해 "나도 할 수 있다"를 외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학교마다 특성을 살리는 전인교육을 고민해 본다. 인문학을 중시하는 학교, 인성을 강조하는 학교, 대안학교를 마쳐도 대학 진학이 가능한 방안 등등. 좀 더 촘촘이 고민하면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고 지역마다 명문 학교를 만들 수 있다. 학교에서 받은 전인교육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가 명문 학교가 되는 것이다.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을 핑계 삼지 않고 학교에 가면 신나는 일만 상상할 수 있는 학교, 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인생을 논하는 넓은 학교, 나무도 있고 숲도 있고 연못도 있고 가을 단풍을 보는 학교, 볼거리가 많아서 학교에 가고 싶다면 교육은 지금보다는 성공적일 수 있다. 이런 학교를 구상하는 교육정책이길 바란다. 

서민과 국민의 감성을 끌어안아야 하는 따뜻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내어만 줘도, 아무 말 없이 안아만 줘도 힘든 것을 잊을 수 있으니.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