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

99분 / 애니메이션 / 전체관람가

영화 ‘태일이’는 1970년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생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태일이’가 흥행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은 영화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에는 다른 영화들이 손쉽게 활용하는 흥행 공식인 일명 ‘오버’가 없다. 전 열사의 영웅적인 측면을 부각하거나 과장하는 대신 우리 곁의 평범한 청년이자 아들, 친구, 동료, 오빠로 묘사했다. 연출을 맡은 홍준표 감독은 "그동안 전태일에 대해 열사 이미지만 갖지 않았나 생각했다"며 "우리와 비슷한 청년 태일이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말했다. 

영화는 태일(장동윤 분)이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시퀀스로 시작한다. 어머니(염혜란), 아버지(진선규) 그리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장남’ 태일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정식 재단사가 돼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월급도 깎아가며 청계천 평화시장의 피복회사에 보조 재단사로 취직한다.

굶는 여공에게 동전을 털어 풀빵을 사다 줄 만큼 정 많은 ‘보조 오빠’ 태일은 이곳에서 일하며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깨닫는다. 태일을 ‘전 형’ 혹은 ‘전 회장’이라며 따르는 동료들과 함께 바보회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하는 시위를 주도한다. 그러나 공무원, 경찰, 하물며 일반 시민들마저도 이들의 목소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태일은 끝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불꽃’이 된다.

태일의 분신 장면도 자극과 과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장면 자체가 길지 않고, 휘발유를 온몸에 뒤집어쓰거나 불을 붙이는 모습도 없다. 병원에 누워 있다 어머니 곁에서 숨을 거둘 때에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제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 주세요." 간신히 당부할 뿐이지만 먹먹함을 자아낸다.

이 대사를 비롯해 영화의 많은 부분은 실제 사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반영했다. 태일이 사회적 기업 설립을 구상하는 장면, 해고 직후 막노동을 하는 장면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도 보여 준다.

1960~1970년대 평화시장을 재현한 일러스트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든다. 한국 정서를 그림에 녹였다.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권해효, 박철민 등 쟁쟁한 배우진이 나선 목소리 연기도 몰입을 높인다. 12월 1일 개봉.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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