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사건이 끝나서 6월은 무풍(無風), 그럭저럭 편안하리라 생각했는데, 총리를 누굴 시키느냐로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초순의 재·보궐 선거부터 삐꺽하면서, 계속해서 경제 상황이 위기니 아니니,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해야 하느니 안 해야 하느니로 이어져 온도를 올렸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썩은 무로 소를 만들었다는 `쓰레기 만두'가 국민의 식탁을 열 받게 했고, 동시에 600년 도읍, 수도 서울을 저 아래쪽으로 보내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입심으로 종내 열탕처럼 끓어오른다.
덥고 지루하고 시끄러운 나날
거기에 의료 파업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무더운 6월, 머리 속의 타오르는 불길은 진정 치유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 뿐인가. 이번에는 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벼르고 있어서 머지않아 인간이고 화물이고 꼼짝없이 염천 아래 서있어야 할 처지가 될 것 같다.
또 국제적 문제로는 덥고 지루하기 짝이 북한 핵 문제 외에도 지금은 이라크에 군대를 추가로 보내야 한다, 안 된다 하는 열띤 양쪽 주장이 나라 안을 더욱 화끈하게 달구고 있다. 단순히 더운 것 뿐 아니라 시끄럽기는 또 얼마나 시끄러운가.
물리적으로는 시원해야 옳을 태풍 디앤무의 영향은 반대로 우리 머리의 열을 올린다. 천재지변이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도 막을 수 있는 재해가 매년 반복된다는 사실. 엄청난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태풍 역시 우리에게는 차라리 무덥고 슬픈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쯤이야, 그런 게 정치이고, 사회 모습이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사려니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각이다. 그러다 급기야 생각하기도 끔찍하고 원통한 대 화산 폭발을 뒷통수에 당하고 만 것이다. 무고한 우리 시민 하나가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이슬람 무장 테러 세력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이다. 김선일이라는 한국 청년과 알 자르카위라는 테러 조직과는 전생의 무슨 나쁜 연(緣)이 있었던가.
안타깝고 숨 졸인 며칠간의 결말은 이토록 비극적이고 야만적인 피살 소식으로 종결되었고, 국민 모두 망연자실,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무도한 만행에 말을 잃고 비통과 절망에 빠져 있을 뿐이다. 물론 천지가 무너질 듯한 그 가족들의 큰 슬픔이야 새삼 필설로 이를 것이 없다.
전 세계의 모든 문명한 국가들 역시 적지 않은 충격과 경악과 분노로 들끓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급기야 이런 비극의 대상국이 되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이 사건은 분명 우리를 격노의 화염에 휩싸이게 하지만 워낙 그 잔인함에 충격이 커서 오히려 모골이 송연하고 식은땀이 흐르는 섬뜩한 느낌이다.
국가의 책무는 잊지 말자
아무튼 이렇게 가지가지 무덥고 슬픈, 비통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나라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국가의 안전,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그것일 터인데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우리 정부가 모르는 새 강제 송환되고 있고, 우리 국민 김선일씨는 먼 이라크에서 슬픈 죽음을 맞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니 하는 말로 우리가 다시 열을 받게 될 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끝없는 입담, 논쟁이나 벌이면서 금새 까맣게 잊고 마는 `까마귀 고기'보다는 훨씬 덜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덥고 슬픈 6월이여, 어서 가라.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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