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환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명승환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매우 거북한 질문이다. 본인이 20여 년 소속돼 모든 것을 바친 곳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도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만큼 이처럼 대학의 위기가 전방위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 위기는 과거에도 늘 있었고, 그때마다 정치권과 교육부의 선심성 공약과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대충 위기를 넘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지방대학 소멸과 함께 대학 자체의 정체성과 자립적 역량마저 말살시켜 스스로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돼 버린 한정치산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맑스사전의 대학편에 따르면 대학은 이미 1500년께까지 약 80개가 있었고,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 소멸될 위기에서 프로이센과 근대 독일에서 고등교육의 핵심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근대적 대학은 프로이센에서 시작되는 신인문주의에 기초하는 대학 개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즉 대학은 ‘빵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학문을 위한 학문’을 추구해야 하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에서는 철학을 신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 삼고 그 밑에 신학부·법학부·의학부를 두고 성직자·관리·의사를 양성했다고 한다. 또 재정적 보장을 함으로써 교수들이 학문과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고, 대학교수 자격제도를 도입해 엄격하게 충원 과정과 업적을 관리함으로써 대학의 품격과 전문성을 유지했다. 그것이 오늘날 대학의 원래 모습이었다.

 이렇게 근대 대학의 개혁 과정에서 중요시한 기본 원칙과 대학의 존재 이유를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은 없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은 대학에서 거의 설 자리가 없고, 철저하게 빵을 위한 학문만 추구하는 취업사관학교가 된 지 오래다. 기업은 무능한 대학을 지탄하고, 대학은 교육부를 원망한다. 그런데도 백약이 무효다. 사실 이는 지방대학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전체의 문제이다. 근대 대학 개혁의 근간이 됐던 자유로운 학문 추구, 재정적 독립, 공정한 교원의 충원과 학사관리라는 기본 원칙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학은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거의 모든 통제와 규제의 수단을 쥐고 있는 교육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육이 더 익숙해지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곧 인간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파고들게 되면 현재의 전근대적이고 관료적인 대학행정, 제왕적 교수와 대학원, 노량진 고시학원가를 빽빽이 채우는 대학생들을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대학들은 거의 다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빵만을 위한 학문을 추구한다면 기업이 스스로 기업대학을 운영하면 되고, 특정 대학과 해외 유학파에 쏠려 있는 교수 충원 실태를 보면 국내 대학원은 문을 닫는 것이 맞다. 그리고 소수의 인서울 대학들이 거대한 온라인 플랫폼과 공유카르텔을 형성해 교육부 사업과 각종 정부의 용역을 독점하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꿈의 대학이 될 것이다. 

 그러한 막강한 소수 파워대학들의 연구와 교육에 쏠려 있는 비정상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핀란드·미국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의 경남 공유대학 모델처럼 산학연이 함께 연계돼 있는 공유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교육부가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주택, 의료, 교통, 문화 인프라 등이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결국 청년들은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갖춘 곳으로 떠날 것이다. 

 정부는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공공 인프라와 대학 공유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하며, 나머지는 대학에 맡겨야 한다. 공기업과 지역의 기업들도 인턴십 제도 확대와 대학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학이 사라지면 기업도 사라진다. 혹시 AI나 로봇이 있으니 걱정 없을 것이라는 환상은 그야말로 환상일 뿐이다. 도대체 나의 진짜 마음을 전달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가르치고, 용서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양자컴퓨팅 AI, 메타버스, 딥페이크, 아바타 세상에서 벌어질 진짜와 가짜의 주도권 전쟁은 정말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미래의 형상이다. 

 이제 빵만을 위한, 부와 권력만을 획득하기 위한, 몰가치적인 실용주의만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대학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제안서 작성과 용역과제 수주에 천재적 역량을 갖춘 선수들만 대우받는 현재의 대학은 대학이라고 할 수 없다. 돈 많은 주요 중앙부처의 바람막이 들러리용, 가시적 실적 달성용, 부처 간 중복적으로 발주하는 사업과제들의 하부 용역 처리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밀려서 그 주변을 맴돌며 열심히 로비하고 학교 내부까지 힘겹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보직교수들과 교직원들이다. 사립대와 전문대는 더 무기력하다. 없어지면 갈 곳이 없으니 교육부와 사학재단의 눈치를 보고 엎드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본인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대로 놔두고 무기력하게 정부만 쳐다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의 대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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