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세상에서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남을 설득하는 기술인 수사학과 소통의 코드를 연구한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일 것이다. 7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해석 모델을 제시한 그의 강연에 유럽인들은 열광했다. 1980년 출간한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는 43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세시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한 탐정 소설이지만,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수사학적 논리로 중세시대 종교적 담론이 생성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시대 수도원의 도서관이 권력의 이데올로기라고 비유했다. 수도원의 도서관이 종교적 담론과 권력을 만들어 내는 지식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중세시대 지식과 정보가 차단된 서민들은 수사학적 기술을 터득한 성직자의 종교적 담론이 세상의 진실이고 진리라는 세계관을 갖게 됐다. 그래서 중세시대를 혹세무민의 시대라고 한다. 

오늘날은 정치적 담론이 혹세무민하는 시대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담론이 현실에 관한 설명이고 지식이라고 했다. 또한 정치적 담론은 권력을 지향하고 있어 사회구성원들이 담론을 통제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진실과 신념을 내포한 정치적 담론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22년 20대 대선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담론의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알고리즘 모델이다. 가짜 뉴스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담론의 진위를 자동으로 검증해 주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언변이 좋고 말 잘하는 수사학적 기술을 터득한 여야 정치인들이 대선 후보의 정치적 담론을 옹호하는 방송을 자주 볼 수 있다. 방송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진영 논리로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으며, 좌우로 갈라선 정치 평론가들도 자신들의 수사학적 논리를 뽐내고 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정치 평론가들이 유권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담론 해석과 좌우의 갈등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비평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방송 토론의 진행자가 균형을 잃고 한쪽의 진영 논리를 옹호하는 질문을 던지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유권자들이 갈구하는 지식은 정치적 담론의 객관적 분석을 통한 진실과 사실을 가늠할 수 있는 평론가의 객관적 해석이다. 화려한 수사학으로 표현하는 말보다 사실을 기반으로 담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진실을 보여 주길 원한다.

진리 검증의 알고리즘 모델 관점에서 대선 후보의 정치적 담론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진실의 정치적 담론이다. 실제 존재했던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과 진실의 맥락 정보가 노출되는 영역이다. 대선 후보들이 걸어온 인생 행로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영역이다. 후보들이 축적한 경험과 경력을 중심으로 자신의 철학과 정치적 독트린을 전달하는 영역이다. 

둘째, 비밀의 정치적 담론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진실의 정보가 수면 위로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경우 후보는 존재하는 진실을 은폐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하거나, 공약을 철회하는 이중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선동적인 제스처와 감성의 언어로 여론을 호도하는 모습도 자주 연출한다. 

세 번째는 공상(fantasy)의 정치적 담론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이나 사실이 노출되는 영역이다. 네거티브 담론의 영역이다. 대선 후보 주변의 맥락 정보를 악용해 실제 존재한 사건처럼 만드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개입하는 영역이다. 대선 후보의 가족과 지인들이 네거티브 소재로 가차 없이 활용된다. 

넷째, 거짓의 정치적 담론이다. 세상에 존재했던 일도, 사건도 아니고, 검증된 맥락 정보도 없지만, 존재했던 사실처럼 조작되는 영역이다. 새로운 사건이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가짜 뉴스와 정보가 요동치는 영역이다. 실제로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담론의 진위와 진정성을 해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유권자의 뇌가 자신이 선택한 후보의 담론을 무조건 신뢰하는 무의식적 편견을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 번 선택한 대선 후보의 부정적 내용은 거부하고, 사실로 밝혀진 진실도 가짜 뉴스로 확신하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대선 후보들 역시 유권자의 무의식적 편견이 작동하는 정치적 담론만을 생산하고 있다. 

2022년 20대 대선은 5년의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선택이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진실의 투명성을 보여 주는 정치적 담론과 유권자의 무의식적 편견이 배제된 현명한 선택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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