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후 대통령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립됐고, 국가 내부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0조 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2021년 2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인구는 3만3천 명 자연감소를 기록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도대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필자는 지난 5년 동안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의 국가적 위험성을 학생들에게 강의해 왔다. 그리고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줬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할 것인가? 결혼하면 자녀를 가질 것인가? 5년 동안 필자의 강의를 수강한 3천여 명의 신입생들 중에서 평균 80%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결혼을 하겠다고 응답한 학생들 중에서 평균 80%는 자녀를 가지지 않겠다고 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에 지방에 특강을 간 적이 있었다. 수강생들의 평균연령은 60대였다. 강의 중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교수님이 도대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올해 1·2학기에 위의 통계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학생들의 미래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해 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줬다. 우리나라 정부가 어떻게 해 주면 결혼도 하고 자녀를 가질 것이냐? 여러분의 입장에서 현실적인 정책을 제기해 보라고 주문했다. 그 다음 주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도록 했다. 

필자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결혼도 하고 자녀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발표한 학생의 내용을 듣고 나 자신이 가졌던 편견이 깨지고 말았다.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해도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청년세대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종합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숨 막히는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미래가 불안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결혼을 생각하고 자녀를 가질 수 있나요?" 한 여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경력단절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녀를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발표한 학생이 결국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우리 청년세대는 이미 진화된 인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만들어도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인 이 세상에서, 그리고 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는 너무나 비싼 아파트 가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결혼을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해 버렸습니다."

진화는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다. 생명체의 목숨을 위협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현실에 맞춰 가는 과정이 진화인 것이다. 올해 9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는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30대 남성 2명 중 1명이 미혼자이고, 30대 여성 3명 중 1명이 미혼자이다. 발표를 했던 학생들 중에 어느 누구도 우리 정부에 요구하는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결혼관과 자녀관은 진화돼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에서 분석하는 취업난과 주택난 때문에 우리 청년세대들이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세대는 살기 힘든 시대에 태어났지만 희망이라는 방향으로 계속 진화됐다. 고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취업도 잘 됐고 사실상 무계획 속에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고 자녀도 가졌다. 그래서 지금의 청년세대가 죽을 만큼 고민하는 문제를 살아오면서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정부의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그리고 잘못된 분석과 편견으로 나타났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된 우리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당신의 자녀들이 부모보다 못사는 나라, 당신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나라, 당신의 자녀들이 가정을 만들지 않는 나라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대선 후보들과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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