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2년 가까이 우리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든 코로나가 최근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걱정이 큽니다. 그동안 견뎌 온 것만도 아픈데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저)에 두 명의 화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앙리 마티스는 오귀스트 르누아르보다 거의 28년이나 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친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르누아르가 인생의 마지막 40년을 집 안에만 있었을 때 마티스는 그를 매일 찾아갔습니다. 관절염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르누아르는 병환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느 날 르누아르가 붓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과 싸우며 작업하는 것을 본 마티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르누아르,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어째서 계속 그림을 그리시는 거요?" "아름다움은 남지만 고통은 지나가지." 

그래서인지 르누아르는 거의 죽기 직전까지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목욕하는 사람들’은 그가 불구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지 14년이 지난, 즉 숨을 거두기 2년 전에 완성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부를 만큼 극심한 병마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붓을 놓지 않았던 르누아르에게서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배움을, 그리고 그 고통은 어김없이 명작이란 선물로 되돌아온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조명연·정병덕 저)에도 같은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8세기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로 여왕의 비호를 받을 만큼 명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기가 서서히 떨어져 마침내 버림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갑자기 건강까지 잃어버려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했으나 빚만 잔뜩 걸머진 채 회복되지 못하고 오히려 빚쟁이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오늘날 위대한 명곡으로 알려진 ‘메시아’를 작곡해 재기합니다. 바로 작곡가 헨델의 이야기입니다.

명성이 자자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몸은 반신불수가 됐고,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엄청난 빚까지 짊어졌습니다. 게다가 그 몸으로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합니다. 이쯤 되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지금 겪고 있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재해석하고, 그 아픔을 희망의 메시지로 바꿔 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고통이 그에게 준 엄청난 선물인 셈입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그 아픔을 돌아보면 압니다. 그때 그 고통은 잊고 살았지만, 그 아픔이 남긴 귀한 향내는 아름다운 추억이 돼 지금의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겪는 고통은 어쩌면 나약한 마음에 면역력을 키워 주는 백신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나약해졌을 때는 ‘만약에’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그때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점점 더 깊은 절망과 원망과 분노로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달라집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을 테니까요.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겁니다. 받아들이면 그때부터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이런 태도로 살아갈 때 우리는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고통을 극복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의 이 고통이 나에게는 성장의 계기가 돼 주고, 한발 더 나아가 그 고통을 극복한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돼 주는 것입니다. 화가 르누아르와 작곡가 헨델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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