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휴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한정휴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대학에서 글로벌 물류와 공급사슬을 강의하면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분야 중 하나가 위험관리(risk management)다. 수차례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학생들의 관심과 호응도가 높다. 위험과 불확실성을 구분해 정의하고 강의를 시작하는데, 위험(risk)이란 기업의 손실을 가져오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알고 있는 상태를 칭한다. 반면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알 수 없을 때를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개념화한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불확실성의 출현으로 위험보다는 불확실성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불확실성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올해 여름 타계한 미국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다. 2002년 펜타곤 브리핑에서 사담 후세인과 대량 살상무기 간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더불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즉, 불확실성이라는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이라크의 결백함을 단정 짓기 어렵다는 말이다. 당시 이 발언은 표현의 모호함 때문에 여러 시민단체에 의해 조롱당했으나 현재는 불확실성을 정확히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럼스펠드의 표현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며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이 제한적임을 시사하는 제대로 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알려진 기지수(旣知數)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알려진 미지수(未知數)들이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未知數)들도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23가지, p. 232)". 

이렇듯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불확실성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의 핵심은 불안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의 출현은 세계 곳곳의 공장이 문을 닫게 만들어 공급사슬의 단절을 가져오고 국내 산업구조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 간 무역분쟁은 예상치 못한 분야의 공산품 품귀 현상을 불러왔고, 경기 부양 정책은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불러왔다.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인 개인들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 증식에 혈안이 돼 있다. 미래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견되는 ‘알려진 기지수(旣知數)’, 저출산도 분명 이러한 불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극복하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경제적·정치적·생물학적 사건들이 맞물린 불확실성은 국제적 학자들도 사악한 문제(a wicked problem)라고 정의하며 대응 방식에 물음표를 던진다. 

최근 나는 위험관리를 위한 중소기업들의 무형적 자산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며 서울대학교의 코로나와 사회적 자본과의 연구를 살펴보게 됐는데 그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자본이란 시민 간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를 통해 생성되는 사회적 자원이다. 특히 개인과 사회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신뢰는 사회자본의 원천으로 이해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신뢰와 자본의 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국민 불안의 정도는 낮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은 것이다. 즉, 불확실성 극복에 있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이 필수적 자산임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은 인간이 위기와 극복에 대응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대저 한 번 번성하면 한 번 쇠퇴하고, 한 번 쇠퇴하면 한 번 번성하는 것이니, 천하의 만물 중에 무엇이 그렇지 않겠는가." 유행병이나 전쟁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번성과 쇠퇴를 반복해 성장하는 인간공동체의 강인함을 통찰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정치와 경제, 방역 문제로 분열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과연 대한민국의 사회적 자본은 불확실성을 극복할 만큼 성숙하고 지속성이 있는지, 사회적 신뢰를 위정자들은 기획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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