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이 삶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왜 그럴까요? 이성복 시인은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해줍니다. ‘그리워서’ 즉 사랑하기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올바른 방법을 몰라서 결국 병이 난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 「오늘 아침 새소리」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사랑이 실패로 끝나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나의 탐욕 때문이고 상대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집착 때문입니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하는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나’도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올바른 사랑은 늘 ‘너’에게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용기를 내게 해줍니다. 사랑의 목적은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겁니다. 지금 그 사람을 ‘애인’처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그래서 서로가 힘을 내어 자기 일에 더더욱 매진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애인이 바로 독자 여러분이고 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작은 이야기」(이도환 저)에 나오는 혼자 사는 노시인과 소녀의 이야기에서 사랑의 올바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쓸쓸히 혼자 사는 노시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목에 심한 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나자 평소에 그를 존경하던 소녀가 방문했습니다. 간간이 들러 집안 일을 도와주곤 하는 소녀였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시인은 썰렁한 거실에 홀로 앉아 딱딱한 빵을 찬 우유에 적셔 먹고 있는 게 아닌가요. "선생님, 왜 찬 우유를 그냥 드세요"라고 말하며 소녀는 벽난로로 가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려고 할 때 시인이 말했습니다. 

"얘야, 그냥 두어라,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된다."

"안돼요. 찬 우유를 드시면 목병이 더 심해질 거예요."

"괜찮다. 이제 목도 많이 나았으니 불을 피우지 말아라."

소녀는 시인이 미안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다시 불을 피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버럭 화를 내더니, 잠시 후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화를 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불을 피우면 안 되는 이유가 있거든. 얼마 전에 작은 새가 저 굴뚝 위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았단다. 나도 며칠 전에야 알았어. 그런데 거기에 불을 피우면 그 새가 어떻게 되겠니?"

잠시 눈을 감고 그렇게 말하는 노시인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참스승을 찾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도 저런 어른이 계신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은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행동들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시인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자기 안에 남을 살게 하는’ 것이라면, 하찮은 존재로 보이는 작은 새는 시인의 가슴 속에 들어가 이미 사랑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 덕에 노시인은 차가운 날씨라는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을 겁니다. 시인에게서 사랑이란 ‘배려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 기뻤습니다.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2019.12)에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의 일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나무꾼이 동네의 버드나무 여러 그루를 베는 장면을 보고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네’라고요. 사랑해야 할 대상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귀한 사랑을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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