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국세심사위원
한재웅 변호사/국세심사위원

우리 현대사를 도식화 하면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 성공의 기반이 만들어진 시기와 군부 독재를 종식시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시기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산업화와 민주화가 따로 진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혁명적인 성과가 있었던 시점을 생각한다면 시기를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화시기를 대표하는 세대는 대략 박정희 대통령 때 청년기를 보낸 60대 중반부터 그 이상 나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시기를 대표하는 세대는 소위 "386세대"라고 처음 알려진 세대로 대략 현재 50대 초반에서 60대 초반 정도 나이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는 사실 이 두 세대의 투쟁의 역사와도 다름없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여 추구해 이념적 가치관을 달리 하면서 정권을 나눠 가졌다. 두 세대는 각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나 민주화는 모두 세계적으로도 ‘기적적’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으므로 이 세대가 갖는 자부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대표하는 정치이념은 ‘냉전 반공주의’에 갇혀있다는 측면에서 명확한 한계가 있다. 산업화 세대는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였거나 남북대립이 격화되던 시기에 있었고, 당시 사회 내부적으로도 반공주의를 체제 강화나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뿌리 깊다. 민주화 세대는 ‘냉전 반공주의’로 무장한 독재와 싸웠지만 투쟁과정에 형성된 이념 체제가 냉전 반공주의의 ‘안티테제’ 형태로 구축되어 반공주의가 갖는 이념적 경직성을 공유하며 반공주의의 좁은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대북문제와 관련해 ‘실사구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북한 정권에 온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결국 반공주의에 반하여 구축된 또 다른 이념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독점하는 정치구조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 소수자들이 갖는 의견과 갈등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는 것을 방해했다. 그렇지만 2020년대부터는 온라인을 시작으로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2030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 세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소비문화만 향유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됐으나 202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젊은 세대의 정치적 목소리가 조직되고 있고 이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 2030세대의 투표율은 이제 더 이상 낮지 않고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2030세대의 정치는 이전처럼 하나의 목표로 모여지지 않고 매우 다원화 돼 있다. 대표적인 화두는 ‘공정’과 ‘젠더 갈등’ 이다. 대선을 준비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이전 선거에서 이미 젊은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거대 정당은 기본적인 이념이나 구조가 ‘냉전 반공주의’ 자장 안에 있어 2030세대의 정치를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보여주기식’ 사람 영입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국민의 힘에서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신지예 씨를 영입했지만 그 전에는 페미니즘이나 젠더 갈등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제시한 일이 거의 없다. 당장 당내에서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2030의 정치적 이슈가 이전 세대와 같이 유력인사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인지도 있는 인사를 영입만 해서는 원하는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까지는 기존 두 거대 정당으로 대표하는 기존 세대의 정치 이념이 우리 정치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만 이런 구도가 해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입’하고 ‘수혈’하는 것으로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이제 주인공이 변경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중심에서 이끌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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