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관찰하게 됩니다. 관찰하면 그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가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요. 김기원 시인은 ‘사랑하면 보인다’라는 시를 통해 사랑의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사랑은 상대나 대상에 대한 관심이자/ 배려에서 출발해,/ 느끼고 공부하고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탁구를 사랑하면 탁구장에 자주 가게 되고/ 탁구의 룰과 수많은 기술을 터득하듯이//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면 사랑하는 상대와 대상의 전문가가 된다."

어느 날부터 탁구를 배우겠다고 나서게 된 동기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탁구를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 사람과 탁구를 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시작한 탁구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탁구에 대한 식견이 높아져 있을 겁니다. 사랑은 이렇게 성장을 견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나 가족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처럼 제가 그냥 죽어가게 해주세요." 이 말은 테레사 수녀님이 돌아가시기 전 심장마비로 입원했을 때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유명인이 돼 버린 자신을 극진히 치료하는 의료진에게 그녀는 "가난한 이들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주세요. 많은 사람이 병원 구경도 못 해 보고 죽어가고 있는데 저에 대한 간호가 어찌 이리도 극진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혈육도 아닌 사람들을 가족처럼 사랑했던 그녀의 삶이 참으로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아잔 브라흐마 저)에 12명의 제자를 둔 스승에 관한 일화가 나옵니다. 스승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제자 모두가 그녀를 흠모했습니다. 스승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2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 문제는 사윗감을 정하는 전통에 따라 사위는 자신의 제자 중 하나여야 하지만 누가 최고의 사윗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부의 아버지로서 결혼식에 들어갈 엄청난 경비가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승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마을에 은밀하게 잠입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훔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훔쳐 와라. 그리고 최고의 물건을 훔친 자가 사위가 될 것이고, 훔쳐 온 값나가는 장물들은 모두 그와 신부에게 주겠다."

제자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스승은 언제나 도덕군자처럼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스승이 시키니까, 또 딸을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훗날 스승의 자리까지 오르고 싶었으니까요.

다음 날 제자들은 훔친 장물들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훔치지 않은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저는 스승님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훔치라는 말씀을 따르자니 아무것도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스승은 "도대체 누가 너를 보고 있더냐?"라고 물었더니 제자는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 도둑질하려는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말에 스승은 그 제자를 사위로 삼았습니다. 

사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나의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처럼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 힘겨워하는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스승의 사위가 된 제자처럼 자신의 양심에 따라 도둑질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바보(?)들이 조금이라도 많아질 때 세상은 조금씩 아름다워질 겁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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