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주는 일. 누군가의 끝이 아닌 누군가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값진 생명을 나누는 일. 단 한 푼의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나눔의 고갱이.

‘장기 기증’은 제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려 노력해도 갈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만큼 고귀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장기 기증은 설령 목숨이 다하는 날 이뤄진다 해도 두려움이 엄습할 만큼 쉽사리 결정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기호일보는 2022년 새해를 맞아 상생의 끝판왕인 장기 기증을 받아 새 삶을 살거나 장기 기증을 통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고결한 분들을 만났다.

그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사지 못하는 ‘생명’을 나누고 받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 때문이다.  

장기를 기증하고 2021년 11월 별세한 故 이서연 씨의 생전 모습. <가족 제공>
장기를 기증하고 2021년 11월 별세한 故 이서연 씨의 생전 모습. <가족 제공>

# "엄마의 장기 기증, 내리사랑처럼 스며들었으면"

"우리 엄마 정말 착하게만 사셔서요. 그분들도 엄마처럼 착하고 좋은 삶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참던 김화정(34)씨는 급기야 울음을 쏟아냈다. "누군지는 모르시겠지만 ‘엄마’ 장기를 받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서다. 곁에서 애처롭게 지켜보던 김 씨의 남편이 슬며시 손수건을 꺼내 아내의 눈물을 훔쳤다.

김 씨는 ‘엄마’ 이서연(57)씨를 지난해 11월 23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같은 해 11월 9일 가족들과 저녁 식사 도중 화장실에서 쓰러진 이 씨를 인하대병원으로 이송한 지 정확히 2주 만이었다. 이 씨는 결국 뇌출혈로 인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도 실낱같은 기적을 학수고대했던 가족들은 가슴이 먹먹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이 씨의 각막과 신장, 간을 모두 5명에게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자택에서 만난 김 씨는 "3∼4일에 한 번씩 평택으로 엄마를 만나러 갈 만큼 가슴 한편에 엄마가 크게 자리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일만 하고 가셨다"며 "엄마가 멋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엄마가 ‘친척 중에 어린 나이에 뇌종양으로 눈이 안 보이는 분이 있다’고 하셨다"며 "그래서 눈을 기증하고 싶어했다. 외손주 4명을 정성으로 키우실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셨기에 엄마의 눈이 어린아이들에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기증 결정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새 삶을 주는 장기 기증만큼 상생의 의미를 잘 구현하는 일도 없다. 주는 이도 받는 이를 모르고, 받는 이도 주는 이를 모르니 그야말로 무조건적 나눔이다.

김 씨는 "우리가 의사는 아니니까 사람 살리기는 어렵지만 엄마는 그에 못지않은 일을 하셨다"며 "장례식 때 보니 엄마가 병원 계실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매일매일 울었던 내 마음도 누그러졌다"고 했다. 이어 "이런 장기 기증이 내리사랑처럼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한다"고 소망을 털어놨다.

# 기적과 기적, 그리고 제2의 삶

2021년 1월 교통사고로 간이 손상돼 혼수상태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고 깨어난 공재섭 씨가 2021년 12월 인천시내 한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았다.
2021년 1월 교통사고로 간이 손상돼 혼수상태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고 깨어난 공재섭 씨가 2021년 12월 인천시내 한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았다.

인천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사는 공재섭(58)씨는 뇌사자의 장기 덕에 제2의 삶을 산다. 공 씨는 지난해 1월 13일 운전 도중 영종도에 있는 용유지하차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뇌가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지만 50%가량 손상된 간이 문제였다. 이식받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만큼 위급한 상황에 내몰렸다.

수능을 본 뒤 대학 합격증까지 받아 놓은 공 씨의 아들 경호 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는 "아버지가 간 수치가 좋아졌는지 잠깐 깨어나시더니 ‘나를 놔 달라. 괜찮고 고맙다’고 하셨다"며 "하지만 이대로 아버지를 보내기 싫어 간이식을 결정했다"고 떠올렸다.

기적은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간이식 결정 다다음 날 기증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외상에 따른 간이식은 국내에도 사례가 없어 수술이 잘 될 확률도 불투명했지만 최상태 가천대길병원 교수의 집도로 같은 해 2월 11일 수술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공 씨는 두 달 보름 뒤인 4월 25일 드라마처럼 눈을 떠 6월 퇴원하기에 이르렀다. 올 2월이면 어느덧 수술 1주년이 된다. 

공 씨는 "신장이식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지금은 투석을 한다"면서도 "몸이 더 나아지고 재기할 여력이 되면 나도 누군가를 돕고 또 봉사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날 위한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한 내가 되고 싶다"고 나직이 속삭였다.

가끔씩은 삶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며 눈물도 흘린다. 공 씨는 "한 번은 휴대전화에 있는 180명의 이름을 쭉 적어 놓고 그들과의 인연을 더듬으면서 많이 울었다. 다시 사는 삶이 그만큼 값지다"고도 했다.

# "남들처럼 코로나 주사 맞아요"…아버지의 웃음

가족 간 장기이식으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든 부자도 만났다. 지난해 3월 15일 아들에게 신장이식을 받은 박영복(65)씨도 그 중 한 명이다.

4∼5년 전부터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던 박 씨의 신장은 2020년 들어 더 나빠져 투석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때 맏아들 재동(42)씨가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버지를 위해 함께 수술대에 눕기로 결심했다. 마침 아들이 사는 인천시 서구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이 있어 수술도 문제 없이 잘 끝냈다.

남들이 들으면 ‘대단한 용기’라며 아들에게 감탄할 법하지만 재동 씨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그는 "특별한 계기라고 하기도 그렇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내가 하겠다고 했고, 고민도 많이 하지 않았다. 아내도 당연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어 "주변에 장기이식 사례가 좀 있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 중에서도 아들에게 간이식을 받은 분이 계셨다"며 자신이 받은 ‘선한 영향력’을 소개했다.

아버지 박 씨는 "삶이 아들 덕에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아들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를 반복했다. 그는 특히 "곧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맞게 된다. 그동안 맞고 싶어도 못 맞았는데"라며 밝게 웃었다. 이어 "TV나 신문에서 가족 간 장기이식 뉴스 등을 보면 내 일 같고 흐뭇하다. 남은 인생 더 열심히 살아 아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 최상태 길병원 혈관외과 교수 인터뷰

 장기이식은 ‘오케스트라 의료’로 불린다. 간담췌외과·이식외과·신장내과와 같은 진료과를 비롯해 간호분과·지원분과까지 여러 의료진이 10시간 가까이 합심하고 협업해야 좋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상태 길병원 혈관외과(간이식팀)교수는 장기이식 수술 집도만 200여 차례 수행한 베테랑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공 씨의 간이식 수술도 그가 맡았다.

 장기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받아들여 보람을 찾아가는 그의 일은 세상으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지만, 때때로 느끼는 아픔 역시 적지 않다.

 최 교수는 "간이식 수술만 보면 우리나라는 뇌사자 기증자가 적어 생체이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뇌사자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아주 많다. 신장의 경우는 환자가 10년 가까이 기다리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장기이식의 긍정적 보도는 효과가 오래 가지 않지만 부정적 보도는 영향이 길게 간다. 부정적 기사가 나와 기증자가 줄면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며 언론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엔 상생과 나눔으로 표현되는 장기 기증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 희망이 보인다는 견해도 내놨다. 최 교수는 "3∼4년 전 뇌사자에게서 간이식을 받은 환자가 회복을 잘 하다가 상태가 나빠졌다. 수술 열흘 만에 뇌출혈 진단으로 (거꾸로)뇌사자가 된 일이 발생했다"며 "아들의 갑작스러운 합병증을 받아들이기 힘든 어머니가 ‘우리 아들처럼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다’며 이식받은 간을 포함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돌아가신 일을 잊을 수 없다"고 소개했다.

 건강을 되찾은 환자를 지켜보는 일도 장기 기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장면이다. 최 교수는 "죽음의 문턱에 있던 중환자가 수술 후 외래 첫 방문했을 때 생기 어린 표정을 보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이식의로서 이런 기쁨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현기 기자 vic@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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