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온갖 생각을 지어내는 ‘생존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일과 무관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의 마음’입니다. 생존의 마음은 상대의 행동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마음이지만 존재의 마음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고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따라서 생존의 마음이 일으키는 나의 감정은 상대의 태도에 따라 결정되기에 감정의 노예라고 한다면, 존재의 마음은 내 감정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감정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생존의 마음 하나만을 마음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이 착각이 원망과 분노 그리고 짜증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존재의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 한 마리가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또 얼마나 궁금하겠습니까? 보이는 것 모두가 신기하고, 만나는 것 모두에서 배울 것들이 천지일 테니까요. 이 마음이 곧 존재의 마음이고,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이고 행복한 삶일 겁니다. 이런 기쁨이야말로 존재의 마음이 주는 놀라운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안도현 시인이 쓴 산문집인 「나는 당신입니다」에 정현종 시인의 ‘송아지’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송아지의 삶에서 존재의 마음이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는지, 감정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미친놈처럼 헤매는/ 원성 들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송아지.// 너 때문에/ 이 세상도/ 생긴 지 한 달밖에 안 된다!"

안도현 시인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아직은 코뚜레도 없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배고프면 젖 빨고 잠이 오면 눈 감고 심심하면 천방지축 들판을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눈망울이 크고 맑고 촉촉한 송아지 한 마리. 그 어미에게도 주인에게도 이 세상 모든 이에게도 기쁨인 새 생명을 시인은 경외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송아지 때문에 이 세상도 생긴 지 한 달밖에 안 된다는 시인만의 기막힌 통찰에 도달한다. 그렇다.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고 늙어가는 이 세상을 싱싱하게 만드는 힘은 어린것들 속에서 나온다. 어린것들을 주인으로 삼고 떠받들어야 이 세상이 젊어지리라."

갓 태어난 송아지가 들판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디에 위험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송아지는 온갖 것들이 신기하기만 할 겁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송아지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비단 나이만 어리다고 어린것이겠습니까. 마음의 나이가 어려야 어린것일 겁니다. 마음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이고, 순수하다는 것은 호기심이 많고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아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까지 합니다. 마치 아기의 천진스러운 웃음이 바라보는 모든 이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순수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지 인간이 의도적으로 채색한 모습은 아닐 겁니다. 이런 마음이 존재의 마음이고, 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또는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살아가는 본래의 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존재의 마음은 이렇게 호기심으로 세상과 교류하고, 그래서 나날이 배워 나가며 행복을 구가하게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겨울지라도 가끔은 저 어린 송아지처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넓디넓은 들판으로 나가 마음껏 돌아다니며 호기심을 풀어나가는 새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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