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참으로 어렵고도 힘들다. 그것은 앞날이 창창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미성년 학생들의 수많은 눈과 귀가 열려 주목하고 경청하는 대상이 교사다. 삶의 경험을 축적해 가는 학생들은 교실과 학교에서 성인인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자극과 동기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어려서 좋은 스승을 만나 그로부터의 가르침이 인생의 등불이 되고 나침반이 돼 자신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인 위인들이 많다. 교사는 그저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것(exist)이 아니라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서 존재하는(present) 삶의 상징이다. 따라서 교사는 사표(師表)로서의 역할 수행이 요구된다.

「논어」에는 스승 공자가 제자들의 수양과 성향에 따라 제시하는 군자(君子)의 정의가 다르게 나타나 있다. 애제자인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묻자 "자기 스스로가 먼저 실천해 본 다음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따라오게 돼 있다"고 스승은 말했다. 이는 학생들의 리더인 교사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강조한 것이라 연계할 수 있다. 역사상 이를 가장 잘 실천한 또 다른 참스승이 있으니 그는 바로 인도의 간디라 할 수 있다. 

그의 일화 한 토막을 살펴보자. 한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멀리서 간디를 찾아 설탕을 적게 먹으라고 타일러 주기를 청했다. 왜냐면 자녀가 간디를 매우 존경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잠시 생각하고서 3주 후에 다시 오면 그때 말해 주겠노라 답하고 두 모자를 그냥 돌려보냈다. 다시 찾아간 3주 후에 간디는 "얘야, 설탕을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단다. 설탕을 좀 줄이렴"하고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간디는 "사실은 저도 설탕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3주 정도 시간을 들여 줄일 수 있는가를 시험해 봤는데 설탕을 줄일 수 있어서 오늘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문제는 행동과 실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훈수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훈수나 비판은 누구에게나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마치 직접 글쓰기가 어려운 일이지 남의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이나 비판을 몇 자 적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과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갑론을박하거나 훈수를 두고 댓글 달고 비판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을 연구하고 수립해 바르게 실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엔 주저하고 더디기만 하다. 따라서 비평과 비판을 앞세우는 사람보다는 실천과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이 우선이다.

다시 학교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어느 때부터인지 "교사는 많으나 진정한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으나 진정한 학생은 없다"는 말이 회자된다. 이는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에 맞는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자세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교사의 경우 말로만 훈수하고 자신은 이와 역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들의 출결은 엄격히 적용하면서 자신은 출퇴근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방역을 말로는 지시하나 스스로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기피한다. 인사를 잘 하라고 훈계하나 정작 자신은 인사하지 않는다. 분리수거를 말하나 정작 자신은 하지 않는다. (……)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언행의 불일치는 부끄러운 교사들의 자화상이다. 

진정한 교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도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 교사는 말이 아닌 행동이 우선이어야 한다. 책을 읽으라 말하기 전에 스스로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는 마치 가정에서 부모가 먼저 노부모에게 효의 행동을 보이면 자녀가 보고 따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교사로서의 삶, 결코 쉽지 않다. 날마다 성찰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언행일치, 실천궁행의 길만이 학생들이 배우고 따르는 가장 확실한 교육의 방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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