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인천시 환경특별시추진단장
장정구 인천시 환경특별시추진단장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다. 눈이 참 많이 내렸다. 겨울이면 일주일 한두 번 종아리까지 눈이 쌓였다. 집에서 신작로까지, 그리고 위아래로 난 길을 쓸고 또 밀어야 했다. 집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왕래가 잦은 아랫집까지는 바로 눈을 치웠다. 넉가래를 밀고 내려가다 보면 저만치 아랫집 형이 눈을 쓸며 올라왔다. 보통은 중간 지점에서 만나지만 서로 길이 이어질 때까지 조금 일찍 시작한 쪽에서 좀 더 치우는 것은 당연했다. 굳이 누가 덜 치우고 더 밀었는지 따지지 않았다. 반가운 인사면 됐다.

무엇보다 아침 눈 쓸기는 신작로까지 등굣길을 내는 것이 중요했다. 100m가 훨씬 넘는 거리로 늘 아버지 담당이었다. 신작로는 차가 다녀 제설 작업이 이뤄졌지만, 신작로까지 눈을 밀지 않으면 두 발로 눈을 헤치며 학교를 가야 했다. 선친은 신작로까지 길을 내고도 양쪽으로 2~3m 정도는 넓게 눈을 더 치운 후 돌아서셨다. 신작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였다.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했다.

눈 내린 날 무 자르듯 자기 건물 앞만 눈 쓸기한 모습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잘 쓸어 놓은 곳도 있고 야박하게 쓸어 놓은 곳도 있다. 염화칼슘을 뿌리는 건물들도 제법 있다. 물론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땅이나 건물은 소유자나 임대인 등 관리주체가 있다. 지번지도를 살펴보면 하나의 동(洞)도 무수하게 많은 선으로 나뉘어 있다. 그 선을 경계로 소유나 관리 책임이 명확하다. 사유지는 사유지대로, 도로나 하천 같은 공적 공간 또한 마찬가지다.

경계선 안쪽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런데 늘 보면 경계선 바깥에서 문제가 생기고, 이곳에서 생긴 문제들은 해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사각지대이다.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일만 하더라도 책임소재가 애매한 사각지대가 늘 문제다. 도로의 경우 안쪽은 청소차 등을 이용해서 관리한다. 반면 도로 밖, 특히 사유지를 접하고 있는 도로변의 쓰레기는 잘 치워지지 않는다. 평지보다 높게 조성된 고속도로의 경우 도로 옆 경사면은 분명 고속도로에서 관리해야 하지만 고속도로 위에서 잘 보이지 않아 방치되기 일쑤다. 수풀이 잦아든 겨울이나 봄이면 혀를 차는 경우 많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의식이 먼저다.

담배꽁초 등 길가 쓰레기가 하천으로 유입돼 해양쓰레기가 되는 과정 또한 경계지대 관리가 핵심이다. 도로에서 하천으로 연결된 수로에서 1차, 비가 내릴 때 수로에서 하천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2차, 작은 하천에서 큰 강으로 유입될 때 3차, 강에서 바다로 흘러들기 전에 또 차단해야 육상에서 유입되는 해양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 관리, 하수 관리, 하천 관리 등 각 부서들의 업무 경계, 공간 경계 때문이 크다.

중앙정부의 경우 도로는 국토교통부, 하천은 환경부, 바다는 해양수산부이고 지자체 업무들도 이에 따라 나뉘어 있다. 한강에서 인천앞바다로 쓰레기가 유입되는 길목인 한강하구의 관리와 관련해서 한강하구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제오늘만이 아닌 이유다.

경계에는 시간적 경계도 있다. 업무의 인수인계가 그러하다.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증발해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행정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책임지기 부담스러운 일들을 서로 뭉개다가 사단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역할과 책임 소재를 가끔 법률가에게 자문을 받아야 할 정도다. 복잡하다는 것은 경계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많은 일들이 무 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다. 협력과 협업이 중요하다. 이에 앞서 옆집의 앞까지 눈을 쓸어주는 인심을 스마트폰의 도시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신작로에서 지나가는 이웃을 위해 좀 더 길을 넓히던 두메산골의 인심을 생각하며 먼저 손 내미는 환경특별시 인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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