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다 가져서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 알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정상에 올랐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 원하던 지위에 올랐을 때의 기쁨은 짧은 시간 동안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하고 어떤 생각을 가슴에 담아야 할까요?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 때 그 아이는 행복해합니다. 어른이 볼 때는 인형 따위가 무슨 행복이겠나 싶겠지만 어린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우리 역시도 순간순간을 저 어린아이처럼 즐길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겁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어차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놀이처럼 하자’고 생각만 바꾸면 가능해지니까요.

어려운 삶의 이치를 매우 쉽게 설명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법륜스님의 법문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분이 쓰신 「인생 수업」이란 책에서 막혀 있던 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글이 있습니다.

"젊을 때는 ‘사람은 왜 사는가?’, 중년이 되어서는 ‘산다는 게 무얼까? 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라고 자문한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어 생각이 있는 건데, 왜 사는지를 물으니 답이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 있다. 그런데 ‘왜 내가 한국인이 됐지?’라고 물으니 답이 없는 거다. 자꾸 묻다 보면 ‘이렇게 살아서 뭐해?’라는 생각에 빠질 뿐이다. 이처럼 왜 사는가를 계속 물으면 자살 같은 부정적 생각으로 흐를 뿐이다."

그래서 스님은 생각을 바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고 조언해 줍니다. "메뚜기도 살고, 토끼도 살고, 나도 살고, 그도 산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살까? 괴롭게 살까? 즐겁게 사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지? 이것이 건강한 사고방식이다. 그냥 사는 거다. 때가 되면 모두 죽는다. 삶은 그냥 주어졌고 결국 다 죽는다. 그러므로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주 명쾌한 설명이지요? 의도하지 않은 채로 내가 태어났고, 언젠가는 나도 죽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삶이 너무도 힘듭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게 삶인걸요. 

그러나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힘든 일 사이에는 어김없이 기쁜 일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낮을 좋아하는 내가 밤이 되면 ‘그저 밤이구나’하고 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삶이지, 밤을 부정하면서 분노를 드러내는 삶은 나를 불행한 삶으로 밀어낼 뿐입니다. 그러니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즐겁게 살까, 아니면 괴롭게 살까’를 자문하고, 즐겁게 살기를 선택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를 즐겁게 살아가도록 해 줄 겁니다.

스님에 따르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그래서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과 권리도 내게 있다. 그런데 자꾸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자신을 괴롭히면 내 행복을 팽개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자신의 삶에 시비를 걸지 말고, ‘어떻게 하면 오늘을 즐겁게 살까?’를 생각하라. 이게 삶의 주인으로 사는 거다."

어린아이가 인형을 갖고 즐겁게 놀고 있듯이 제 삶 역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이 이렇게 쉽고 단순하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그것은 바로 ‘왜’에서 ‘어떻게’로의 생각의 전환입니다. 그러니 힘들 때마다 ‘어떻게 살래?’ 즉, ‘즐겁게 살래? 아니면 괴롭게 살래?’를 스스로에게 묻고 과감히 즐겁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굳게 닫힌 행복의 문이 서서히 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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