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우크라이나 영토의 외곽을 러시아 군대가 포위하고 있다. 공격에 필요한 전력의 70%를 국경지대에 배치하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훈련까지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푸틴의 결정이 전달되면 곧 대규모의 군대가 국경을 넘을 태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내부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선 갈등, 우크라이나의 독립 의지와 동부 영토 고수 등 문제들이다. 우크라이나는 패배할 경우 나라가 동서로 분단되고, 러시아 체제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서부지역 주민들과 정부는 결사항전을 대비 중이다. 한편으로는 서양 세력들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불만을 표시 중이다. 이 사태는 궁극적으로 유럽 및 세계 질서와 연관됐기 때문이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USSR)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벨라루스·몰도바·발트 3국은 독립했고, 동유럽 국가들도 위성국의 지위에서 벗어났다. 이 독립 국가들 대부분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이 됐다. NATO의 맹주 격인 미국은 70여 년 동안 러시아 세력과 세계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중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마저 나토 회원국이 되면 유럽과의 완충지대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격적인 자위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따라서 이 사태는 당사국들, 나토의 주요 회원국들, 미국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천연가스의 공급을 비롯한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서이다. 

우리도 벌써부터 손해가 발생하는 중이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면에서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사태를 예의 주시한다. 인류애로서의 연민도 강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여러 면에서 우리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와 일본의 관계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악연의 관계였다. 두 나라는 ‘루스(Rus)’라는 바이킹족에서 출발했고, 훗날 키예프(Kiev) 공국에 속했다. 하지만 계속 갈등관계에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항상 열세였다. 러시아가 세워지면서 우크라이나는 편입됐고, 제정러시아가 붕괴될 때 일시적으로 독립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됐다. 그리고 1991년에야 독립했으니 거의 30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앙숙관계이다. 

둘째,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는 패배하면 동서로 영구 분단될 수 있다. 소비에트 정권의 책략으로 우크라이나의 동부지역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살게 됐다. 그들은 종족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거나 러시아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미 2014년을 계기로 크림반도는 러시아로 빼앗겼고, 지금도 일부 동부지역에서는 무장 반군들이 활동 중이다. 

셋째, 우크라이나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한민족과 연관이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초원과 흑해 북안에는 기원전 8~7세기부터 그리스인들에게 ‘켄타우로스(얼굴은 사람 몸은 말)’라는 괴물로 인식된 스키타이인들이 활동했다. 그들은 가공할 만한 청동무기를 바탕으로 전투적인 기마문화, 찬란한 황금문화, 거대한 고분문화라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성을 만들었다. 이 우수하고 독특한 스키타이 문화는 캅카스(코카서스)산맥과 카스피해 등을 넘어 동진하면서 시베리아에 들어와 ‘스키토 시베리아’라는 문화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군사집단과 더불어 몽골초원, 동몽골, 만주, 한반도까지 연결됐다. 원조선의 유물들, 고구려의 예술품들, 그리고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과 청동 유물들은 이 문화와 직간접으로 연결됐다. 

반면 동아시아의 기마 유목민들은 기원전부터 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4세기 무렵 우크라이나 일대에 ‘훈’이라고 불린 집단들이 쳐들어와 유럽 역사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5세기 중반에는 훈족의 수장인 ‘아틸라’가 등장해 동유럽과 남유럽, 사산조페르시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지역은 투르크(돌궐) 세력들과 몽골계 나라(아바르한국, 킵차크한국, 크림한국 등)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인들 가운데에는 우리와 혈연적으로 관련이 깊고,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들을 간직한 범타타르계 사람들이 있고, 또 그 땅은 우리 문화와 인연이 깊은 터이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는 개인의 도덕 가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강한 러시아는 악이고, 약한 우크라이나는 선이다"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가급적이면 불행한 사태가 터지지 않도록 빌고, 엄청난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전쟁이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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