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60여 달러 남짓하던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으로 최근엔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이상의 세계 7번째 3050 국가 클럽에 들었다. 2021년 7월 2일엔 유엔경제총회인 운크타드(UNCTAD)가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선진국으로 승격된 세계 최초의 사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누적된 불평등과 불공정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정부의 명령에 의해 벼랑 끝에 몰렸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예컨대 학교와 보육시설이 문을 닫자 돌봄의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갔다. 자영업자들은 파산으로 죽겠다고 온통 난리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서글픈 자화상을 보자. 인도주의 의술을 실천하는 슈바이처가 되겠다고 의대에 진학했던 수많은 청년이 국민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공공성에 눈을 감았다. 코로나 2차 확산이 본격화되던 2020년 여름, 정부가 지역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청년 의사들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위중한 환자들을 앞에 두고 진료를 집단으로 거부했다. 왜 대한민국이 이렇게 됐을까? 과연 이런 대한민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위상은 한류의 세계화로 갈수록 높아져 간다. 하지만 이 역시 ‘극소수만의 성공’이라는 비극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는 바로 승자독식(Winners take all)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 경쟁으로 1등 지상주의를 신봉하는지를 보여 준다.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에 엄청난 찬사와 환호를 보내면서 그 영화가 말하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빈곤에는 정작 눈을 감고 있다. 또한 BTS에 열광하면서도 성공지향적인 교육체제에 짓눌려 꿈을 잃고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의 피눈물 나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다. 겨우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뒤늦게 뒷북을 치고 외양간을 고치려 한다. 

우리가 행복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여기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도덕적 개인을 넘어 합리적 시민이 되기를 가르쳐야 한다. 이는 한국의 공교육이 놓치는 상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한 뒤 토론하고 합의안을 찾는 것, 타협하는 법을 입시 교육보다 우선해 가르쳐야 한다. 

둘째, 청소년들의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왜’와 ‘무엇’을 묻도록 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 기반의 사회를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혁명의 슬로건은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로 요약된다. 이제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숫자가 말을 하게 해야 한다. 

넷째, 지표를 바꿔야 한다. 허리가 튼튼한 사회, 즉 중산층을 국가의 최고 지표로 설정해야 한다. 

다섯째, 기성세대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즉, 청소년들과 연대해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서 한국의 불행을 더 이상 ‘빛 좋은 개살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선진국 진입에 합당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공적 복지 확대 없이 성장만으로도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한국인의 믿음은 바로 한국의 성공 신화가 만든 성공의 덫이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날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모든 교육정책을 새롭게 지향해야 할 표준, 즉 뉴노멀(New Normal) 방식으로 전환하고 뿌리 깊은 학벌체제 타파를 위한 혁신교육의 과감한 실행을 단행하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이 돼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 했다. 위기의 시대, 우리 사회는 이를 전화위복이자 천우신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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