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연 ㈔미추홀공덕회 이사장
석종연 ㈔미추홀공덕회 이사장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은 마음에 적립됩니다. 생각은 또 행위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일체는 마음의 조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위 하는 자기를 보지 못한 사람은 눈이 자기인 줄 압니다. 귀인 줄 알고, 코인 줄 알고, 입인 줄 알고, 몸뚱이인 줄 착각합니다. 눈이나 코나 입이 자기가 아닌데 그놈을 자기로 알고 그것으로 보니 저 사람 코는 잘생겼다, 내 코는 못생겼다 하는 형상에 치우칩니다. 거울을 보면 짜증나고, 그러다가 성형외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달린 눈, 귀, 코, 입, 몸뚱이가 본래 무상한데 자기 것인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알아채는 체험으로 잘못된 생각을 끊임없이 정화시켜야 합니다. 체험 가운데 체험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 ‘무엇을 본다’라고 할 때는 반드시 알고 보는 기준이 있습니다. 생각의 틀에 맞춘 기준으로 바라봅니다. 생각의 틀을 갖고 어제까지의 지식과 경험 등을 바탕으로 판별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것은 무엇이다’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볼 때 개념과 이념을 떠나야 합니다. 생각과 감정으로 바라보지 말고 체험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고정돼 있는 자기 생각은 마치 색깔 있는 안경과도 같습니다. 모든 것에 색을 입혀 버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니 자기 생각을 버리고 바라보라는 말은 부처님 말씀을 기초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바라보는 것을 「반야심경」에서는 공으로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자기 이성이나, 자기 행위가 바라보는 기준이어서는 안 됩니다. 「화엄경」, 「법화경」, 「반야심경」, 「능엄경」 등 모든 경전이 바로 이것을 강조합니다. 

자기 생각을 조리로 거르듯 부처님의 말씀으로 걸러서 바라보십시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연법,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 또한 사라진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연기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공으로 보라는 것은 이 ‘연기법’으로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스스로를 얽매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이연기는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바라보는 중생, 무명번뇌와 뒤집어진 헛된 생각에 빠진 중생이 어떻게 고통받고 윤회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색이 있으므로 육입이 있고, 촉이 있고, 수가 있고, 애가 있고, 취가 있고, 유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출발점은 무명입니다. 우리를 중생이게 하는 것, 밝히 알지 못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무명으로 빚어진 자신 고유의 ‘생각의 틀’로 바라보니 있는 그대로가 제대로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바라보면 인연 전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연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중도’입니다. 치우치지 않은 가운데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중도가 아닌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이쪽 기준에서 보면 이것은 보이지만 저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쪽 기준에서 보면 저것은 보이지만 이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명에서 시작해 유로 이르기에 다시 태어나는 자기가 있다는 것을 밝혀 줍니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늙고 죽음이 있으며 근심, 걱정,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받기에 자신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기의 생각을 부처님이 정한 윤리적 실천 지침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같이 부처님이 정하신 오계를 항상 생각하며 정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저도 끊임없이 정화시키려 노력합니다. 때로는 음악도 들으며 정화시킵니다. 도가 좀 열리면 염불을 들어야만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영화를 보거나 깡패나 강도질하는 사람을 보고도 정화시켜 갈 힘이 생깁니다. 설거지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남편과 싸움을 하면서도 정화시킬 수 있는 그 단계까지 갔을 때에 비로소 공부가 됐다 할 수 있습니다. 

도가 열린 사람은 남편과 싸울 일이 있어도 극단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자신을 알아챈다면 동시에 무릎을 꿇게 돼 있습니다. 나라는 아상을 세우기 때문에 남편이라는 상과 충돌하는 것을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아상을 없앤 이는 섬김으로 갈등을 해결합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머리 위에 남편을 올려놓으십시오. 부처님 모시듯 남편을 올려놓고 부처님께 염불하듯 남편을 고마워하고 그리워하십시오. 아들딸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로 생각해서 머리에 이고 염불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참선, 교리공부, 염불주력 모두 다 부처님 말씀입니다. 봉사, 나눔, 바라밀은 부처님의 행입니다. 내가 이것을 행할 때 비로소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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